27일 전남 순천시 승주읍 조계산 동쪽 자락에 자리잡은 선암사(仙巖寺)에서는 태고종 스님이 되기 위한 제28회 합동득도수계산림(合同得度受戒山林)이 열렸다. 한국불교 태고종이 매년 수행자를 배출하기 위해 실시하는 이 과정에서 4주동안 예비승려가 되기 위한 기초소양과 한국불교 전법을 배운 후 264명이 이날 사미계를 받았다. 지난 1일 입제식을 가진 올해 수계산림에는 당초 281명이 참가해, 최종 264명(남자 206명, 여자 58명)이 교육을 마쳤다. 지난해 보다 91명, 참가자가 가장 많았던 IMF 체제 직후인 1999년 보다 65명이 많다. 10대 초등학생에서 교장, 병원장, 고위공무원 출신 등 사회지도급 인사들까지, 다양한 직업과 이력을 지닌 사람들도 포함돼 있다. 태고종의 출가연령은 원래 50세 이하이지만 다양한 출가 희망자를 수용한다는 차원에서 50대 이상 지원자도 참가시켰다.태고종의 율법 상 결혼과 가정생활이 허용돼 속세와의 연을 완전히 끊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은 왜 이렇게 삭발하고 계율을 지켜야 하는 고행의 길을 택했을까. 1962년 대구 사범대를 졸업하고 경주 산내상고, 구미 금오중, 북삼중 교장을 지낸 뒤 정년을 2년여 앞두고 산문에 든 도림(59) 스님은 "자식들을 다 키운 후 뭔가 허전한 마음이 있었는데, 지난해 박현태 전 KBS 사장(지연 스님·현 경기 백련사 주지)의 출가를 보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모든 일을 대할 때 제 자신을 한없이 낮추는 하심(下心)의 자세를 지키겠다"면서 "중노릇 잘못하면 절이나 속가에 모두 죄를 짓는다는 말을 항상 명심할 것"이라고 각오를 밝혔다. 윤명(31) 스님은 서울예대 연극과를 졸업하고, 국립창극단과 한국 창극원에서 단원으로, 또 15대 품바로도 활동했던 배우. "어렸을 때부터 스님들 흉내내기를 좋아했고 그 동안 두 차례 출가를 시도한 적이 있었다"는 그는 "은사 스님인 서울 백련사 설산 스님이 쓰신 책 ‘인연’을 읽은 후 결심을 굳혔다"고 말했다.
경기 포천에서 왔다는 범성(33) 스님은 특이한 사연을 지니고 있다. 7세와 6세 남매를 두었다는 스님은 "큰 딸이 ‘혈액 알레르기’라는 희귀병에 걸렸는데, 포천 지장암에서 백일기도를 올리다 한 스님의 권유로 아침마다 사찰에서 올리는 다깃물을 먹인 후 7일만에 완치해 그 길로 귀의했다"며 웃음을 지었다.
경북대 의대 대학원을 나와 20여년간 병원장을 지낸 성봉(49) 스님, 행정고시에 합격해 경제기획원과 전매청 등에서 근무했다는 정성(66) 스님도 눈길을 끌었다. 정성 스님에게 교육과정 중 가장 어려운 점이 무엇인지 묻자 "잠자리, 음식 등 교육환경이 열악했고, 나이 어린 도반들이 함부로 말하는 것이었지만 이것도 하나의 수행이라고 여겼다"고 털어놓았다.
이날 행사에는 수계자와 가족, 태고종 주요 간부 등 1,000여명이 참석, 예비스님들을 축하했다. 사미계를 받은 스님들은 1년 후 다시 소집돼 합동교육을 받은 후 승적을 받게 되며, 그 후 태고종립 동방불교대학이나 각 사찰 강원 등에서 공부한 후 3~5년 후 비구계를 받고, 정식 승려가 된다.
선암사(순천)=최진환기자 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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