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수도 이전 논의는 없던 것으로 되었다. ‘정치권이 타격을 입기도’ 하였지만 그 동안 국민은 마음이 상했고, 나라는 에너지를 소모하였다. 특히 충청권 주민들은 혼란에 빠졌다. 이렇게 많은 비용을 지불했는데 이번에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 것은 고약한 일이다.많은 것을 잃었지만 얻은 것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정부나 국회로서는 당혹스러운 일이겠으나 민주주의의 기본원리인 삼권분립이 작동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은 큰 득이다. 수도 이전과 같은 국체에 관한 주요 사항을 정략의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거나 국가 정책은 올바른 내용과 함께 마땅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교훈도 잘만 새기면 약이 될 수 있다.
이제 남은 문제를 해결하고 앞으로 나아갈 차례다. 그 중 먼저 할 일은 그간의 찬반 논의와 정책 파기가 국론 분열로 치닫지 않도록 당사자 모두가 자중자애하면서 그것이 남긴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는 것이고, 다음으로는 심기일전하여 국정을 추스르는 것이다. 실질적 국정 과제로 부각된 국토 균형 발전과 수도권 과밀 해소를 위한 대안을 모색하는 일도 미루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정치권 일각에서 나오고 있는 ‘행정특별시’니 ‘신행정타운’이니 하는 말은 듣기에 구차하다. ‘청와대와 국회만 안 가면 되는 것 아니냐’는 발상은 ‘헌재의 결정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에서’라는 조건문이 말하듯이 다시 편법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충청권에 대한 배려 같기도 하지만 그런 달래기는 점잖은 대접이 아니다. 균형발전이라는 명분을 계속 좇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청와대와 정부의 부처를 떼어놓아 국정 수행의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것은 작은 것을 탐하여 큰 것을 잃는 격이다.
‘충청권 대책’은 네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그들이 입은 마음의 상처를 함께 아파 하고 엎드려 이해를 구하는 것이다. 또 표나 얻을 요량으로 은근히 부아를 돋우거나 감언이설을 늘어놓는다면 거듭된 모욕이 될 것이다. 둘째, 정책의 실패로 인한 땅값 및 그와 관련된 금융 부문의 손실과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구체적 대책을 강구하는 것이다.
셋째, 수도 입지 대상지였기 때문에 배제되었던 제도적 기회들을 회복시켜야 한다. 넷째, 지역이 가진 교육, 과학기술연구 및 기업의 입지 잠재력을 평가하여 국가 차원에서 적절한 계획을 세워 지원하는 것이다.
원론으로 돌아가 보자. 정부가 국토의 균형발전을 추구하는 것은 마땅하고도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대가를 지불하고라도 추구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네 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 권력의 분산이 입지의 분산에 선행해야 한다. ‘백약이 무효’라고들 했지만 그 동안 대통령과 중앙정부의 권력분산이라는 근본적인 처방은 써 보지 않았다. 둘째, 지방의 자생력을 함양하는 데 역점을 두어야 한다. 주요 지방대학에 대한 지원을 획기적으로 늘리고 국책연구기관들을 연계시키면 시너지 효과가 난다.
셋째, 민간 부문이 앞장설 수 있도록 규제를 풀고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공공기관 지방 이전과 기업 혁신 클러스터 같은 기존 정책은 일부 조정을 거치면 쓸 수 있다고 본다. 넷째, 한반도 전체를 놓고 지정학적 전략을 구사할 필요가 있다. 남해안관광벨트 개발로 서울에서 가장 멀고 낙후한 곳에 새로운 성장축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한 세대 전에 수출 전선으로 나라의 문을 열었다면 이번에는 남해안 벨트로 세계를 부르는 해양시대를 열자는 것이다.
형세가 마땅치 않고 수가 안 보일 때는 고개를 들어 전체 국면을 다시 살피고 원칙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다. 그르친 일에 연연하여 옹색한 수를 찾기보다는 국리민복과 국가발전의 너른 길이 어디에 있는가를 살펴야 할 때이다.
유우익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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