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성의 눈빛은 강렬하다. 타오르는 그의 눈동자는 서슴없이 사람의 목숨을 빼앗기도 하고(본 투 킬) 몽골 기병의 칼을 두려움 없이 맞이하며(무사) 미치광이 상관에 굴하지도 않고(유령) 시골 건달의 야비함에 끊임없이 맞선다(똥개). 또한 그의 눈매는 선하다. 그 선함은 국가로부터 버림을 받아도 흔들리지 않으며(유령) 친구에게 배신을 당해도 변치 않는다(태양은 없다).‘내 머리 속의 지우개’에서도 그의 눈빛은 강함과 부드러움 사이를 오간다. 자식을 버리고도 아들의 의무만을 강요하는 어머니와 수진(손예진)의 옛 남자에게 분노를 폭발 시킬 때 그의 눈은 무섭게 불타 오른다. 그러나 수진을 처음 만났을 때와 그녀를 사랑하고 그녀와의 이별을 준비할 때의 물기 어린 눈동자는 관객의 마음을 울린다.
"여름에 전국을 돌며 땡볕 아래서 촬영을 많이 해 힘들었어요. 강릉 등 가장 더운 곳만 좇아 다니면서 찍은 듯 해요. 감정이입에는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눈빛연기만으로 주인공 철수 역을 족히 해낸 듯한 그에게도 넘기 힘든 벽이 있었다.
"남편을 기억조차 못하는 수진을 철수가 찾아가는 장면에서 영화 속 인물과 현실의 저 자신 사이에서 감정의 충돌이 있었어요. 과연 실제 상황에서도 제가 철수처럼 행동할 수 있을까 스스로 의구심을 가졌고, 그의 심정을 고스란히 관객들에게 전할 자격이 있는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의 감동을 최대한 전달하려고 최선을 다했다"는 그는 "너무 열심히 촬영에 임해 영화를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만큼 관객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 했다. ‘가슴 절절한 사랑이야기를 보고 남자들이 박수를 쳐줄까’는 그가 특히 신경 쓰는 부분. "여자들보다는 남자들이 제가 보여준 남성상에 공감하고 ‘내 머리 속의 지우개’를 호평했으면 좋겠어요."
10년간 불량배, 킬러, 해군장교, 무사, 백수 등 다양한 배역을 소화해 왔음에도 사랑, 정의, 의리라는 단어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았던 그는 변신을 위한 변신은 하고 싶지 않다고 한다. 자기에게 딱 맞는 옷이 있는데, 괜한 욕심 때문에 맞지도 않는 남의 옷을 탐내다 보면 이미 다져 놓은 캐릭터도 상처를 입고 새로운 것도 제대로 완성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잘 짜여진 시나리오로 인물의 성격을 제대로 만들어낼 영화라면 주저 없이 변신을 시도할 거에요. 결국 시나리오속에 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프랑스 영화 ‘태양은 가득히’에서 알랭 들롱이 연기했던 리플리 역을 꼭 해보고 싶다는 정우성은 차기작으로 진한 사랑 이야기가 버무려진 누아르 영화에 출연할 예정이다.
뮤직 비디오 4편을 연출한 그는 요즘 감독 데뷔를 조용히 준비하고있다. "꼭 해야지 하면서 계속 미뤄왔는데, 내년에는 정말 실행에 옮기려고 해요." ‘내 머리 속의 지우개’ 촬영에 들어가기 전 시나리오를 거의 완성했는데 지금은 수정을 거듭하고 있다. ‘열혈남아’ ‘아비정전’ ‘비트’처럼 거칠고 색깔이 진한 청춘 멜로 영화가 될 것이라고 한다. 같이 준비하자는 프로듀서도 있고 관심을 보이는 제작자도 의외로 많다고. "영화현장은 모든 것이 즐거워요. 실패의 두려움은 없어요. 연출을 통해 연기와는 다른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싶을 뿐이죠."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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