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엄마에게 버림 받고 대목수 밑에서 잡초처럼 자란 철수(정우성)라는 남자가 있다. 공사장의 고집불통 십장인 이 남자는 눈물은 메말라 있지만 건축사라는 꿈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건설회사 사장인 아버지 밑에서 곱게 자랐지만 유부남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 마음에 생채기를 입은 수진(손예진)이라는 여자가 있다.자란 배경이 판이하고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남녀가 사랑에 빠진다. 여자 집안의 결혼 반대가 사랑에 작은 걸림돌로 작용하지만 수진의 알츠하이머병이라는 더 큰 장애가 이들의 사랑을 시기하고 둘을 갈라놓는다. 철수가 수진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그들의 첫 만남 장소인 편의점에 가족을 동원하는 장면이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 기억이 문드러진 수진이 "여기가 천국인가요"라고 말하는 모습은 관객에게 눈물을 왈칵 쏟게 만든다.
‘내 머리 속의 지우개’는 눈물을 부르는 비극적 사랑 이야기의 전형을 그대로 답습하는 영화다. 그러나 가장 행복한 순간에 산산조각 나는 사랑을 풀어가는 방식은 전혀 낡지 않았다. 감독은 자칫 화면이 눈물 범벅으로 될 위험을 세련된 감정 조절과 아기자기하고 리듬감 있는 편집으로 비켜간다. 오히려 CF처럼 지나치게 매끄러운 화면에 집착해 관객의 감정몰입을 방해한다. 극의 전개와 전혀 상관없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간접광고(PPL)가 정성 들여 만들어낸 깔끔한 이음매에 흠집을 낸 점도 아쉽다.
제9회 부산국제영화제 기간에 270만 달러를 받고 일본에 최고 가격으로 수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데뷔작 ‘더 커트 런스 디프’(The Cut Runs Deep·2000년)로 감각적 영상을 선보였던 재미동포 이재한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11월5일 개봉. 12세관람가. 라제기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