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가 되면 갑자기 숨이 턱 막혀 창 밖을 바라보며 ‘휴우, 휴우’ 숨을 몇번 쉬어 줘야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사람. 아침에 눈 뜨면 또 하루가 시작되는 게 지겨워 눈을 질끈 감는 사람. 따분하고 답답한 일상에 지친 이들에게 영화 ‘모터싸이클 다이어리’는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다.두 청년이 길을 떠난다. 그 중 한명은 젊은 날의 체 게바라. 20세기 가장 완벽한 인간으로 추앙 받는 그지만, 영화 속 그는 천식에 시달리는 병약한 몸에 지독하게 정직한 성품의 스물 세 살 청년일 뿐이다. 게바라 스스로 "나의 인생을 송두리째 변화시켰다"고 말했던 이 여행.
영화는 평범한 청년 게바라와 친구 알베르토가 안데스 산맥을 넘고 사막을 지나 남미 대륙 곳곳을 훑으면서, 배고프고 가난하고 지친 사람들을 만나고 배우고 가슴 속에 혁명에 대한 뜨거운 열망을 심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영화는 동명의 소설과 체 게바라가 훗날 이 여행을 회고하면서 쓴 ‘나의 첫 대여행’과 동반자 알베르토가 쓴 ‘체와 함께 한 남미여행기’ 등을 바탕으로 했다.
이 영화는 무용담도 아니고 주인공을 영웅으로 그리고 있지도 않다. 시종일관 웃음이 넘쳐 나는 따뜻한 로드무비 형식이다. 두 청년이 지나고 머무는 페루의 이퀴토스, 잉카문명 최후의 도시 마추픽추, 아르헨티나의 떼무꼬, 아따까마 사막 등 남미 대륙의 풍광은 말할 수 없이 아름답다. 음악은 또 어떤가. 영화 음악을 맡은 남미의 음악가 구스타보 산타올라야는 남미 각국의 리듬을 찾아내 우리에게 들려 준다. 그들이 국경을 넘을 때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리듬을 느껴 보는 것도 좋다.
게바라 역에는 ‘이투마마’로 베니스영화제 신인상을 수상했고 ‘나쁜 교육’ 등에 출연하면서 남미의 스타로 떠오르고 있는 멕시코 출신의 배우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이 맡았다. 꿈도 열망도 잊은 채, 잔뜩 쪼그라든 심장으로 근근히 살고 있는 평범한 이들에게 영화는 가슴이 펑 트이는 시원함을 선사할 것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그 시원함은 독이 될지도 모른다. 2시간 가까이 남미를 누비다가도 극장문을 나서는 즉시 소심한 범인으로 돌아온 자신을 발견했을 때의 상심은 책임지지 못한다. ‘중앙역’의 월터 살레스가 감독했고, 로버트 레드포드가 제작했다. 개봉은 11월12일.최지향기자 mis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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