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 문제는 우리 일본인들 자신을 위해서도 꼭 해결돼야 합니다."2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도서관에서 열린 야스쿠니 신사 문제 관련 공청회장에서 만난 오구치 아키히코(大口昭彦·60) 변호사는 일본 내에서 대표적 친한파 지식인으로 통한다. 1995년 일본제철 강제징용자 유족들이 제기한 미지불 임금 반환소송에서부터 4년째 계속중인 야스쿠니 신사 한국인 합사 취소소송에 이르기까지 10년째 굵직굵직한 한일 과거사 관련소송을 도맡아 온 까닭이다.
오구치 변호사는 한일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를 묻자 대뜸 "4·19혁명이 내 삶을 바꿔놓았다"고 말했다. 당시 와세다대 정치학부에 재학 중이던 오구치 변호사에게는 총칼의 위협에 꿋꿋이 맞섰던 한국인들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과 용기가 경외심을 넘어 전후 일본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는 판단이 섰던 것이다. 당시로서는 일본 대학가에서조차 생경한 주제였던 한일관계사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던 것이나, 65년 한일수교협정 체결 당시 "한국과의 수교는 일본제국주의의 부산물인 한반도 분단을 고착화시키는 정치적 과오"라며 학생운동 대열에 나섰던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였다.
오구치 변호사가 한일 과거사 문제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과거사 문제는 일본 민주주의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큰 산"이라는 평소의 지론 때문이었다. 그는 "천황제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야스쿠니 신사 문제만 해도 합사된 영령에 대한 숭배를 통해 추악한 전쟁을 미화시키려는 의도가 담겨있는 것"이라며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참배는 단순한 종교 문제가 아니라 아직도 진정으로 고개를 숙이지 못하는 전후 일본사회의 구조적 한계를 드러내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구치 변호사는 "그러나 한일수교가 이루어진 40년 전과 비교하면 일본 내에서도 다행히 반성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며 "한국에서도 지나간 문제를 들추어내는 것이 무슨 소용이냐고 말하기 전에 적극적 관심을 보여주는 것이 진정으로 한일관계를 위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올해 12월 환갑을 맞는 오구치 변호사는 "아직도 학창시절 품었던 정의에 대한 신념은 버리지 않았다"고 말한다. 60년대 초반 나리타 공항 건설 당시 주민들과 함께 토지수용 반대투쟁을 벌였던 인연 때문에 최근까지도 한국에 올 때면 가까운 나리타 공항을 놔두고 나고야까지 가서 비행기를 타곤 했다는 오구치 변호사는 "참고 기다리니 하네다 공항에도 국제선이 생겨 편히 다니게 됐다"며 "오랜 세월 고통을 감내해온 태평양전쟁 희생자 유족들에게도 좋은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성철기자 foryou@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