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삼성의 한국시리즈 4차전이 열린 25일 밤 대구 구장. 종료 사이렌이 울리는 순간 팬들은 전광판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겨우 밤 9시51분. 12회까지 0의 행진이 새겨진 이닝 판에는 15회까지 빈 공간이 남아 있었지만 불은 꺼져 있었다. 한국시리즈 사상 최고의 명승부로 기억될만한 경기의 결말 치고는 너무나 허망했다. 승자의 당당함도, 패자의 아름다움도 없었다.4경기 중 벌써 두번째. 시간제한(4시간)과 이닝제한(12회)에 묶인 ‘무승부시리즈’가 이어지고 있다. 감독(김응용 삼성 감독 "선진야구를 하려면 이닝 제한은 없애야 한다")도, 선수(현대 브룸바 "챔피언 결정에 웬 무승부냐")도 화가 났다. 팬들도 분노하고 있다. ‘홈런으로 결판을 내는 승부 때리기를 하자’거나, ‘무승부 규정은 스포츠 정신을 훼손하는 위헌’이라는 반발들이 쏟아지고 있다.
스포츠에서, 그것도 팀간 승패를 가리는 매치플레이에서 무승부를 용인하는 예는 드물다. 최근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밤12시를 넘기면서까지 연장 혈전을 벌이는 모습을 우리 팬들도 흥미진진하게 보았다.
일본 프로야구에도 무승부 제도가 있지만 우리처럼 경기시간을 제한하지는 않는다. 선수를 보호하고 공격야구를 유도하기 위해 무승부 제도가 불가피하다는 한국프로야구위원회(KBO)의 설명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정규시즌에 해당될 수 있는 논리다.
포스트시즌은 단기전으로 끝나는 진검승부다. 팬들이 가을 잔치에 열광하는 것은 최상의 전력을 갖춘 팀들이 승리를 위해 사력을 다하기 때문이다.
양 팀은 두번이나 승부를 가리지 못하며 8시간 이상 헛품 만 팔았다. 집중력과 에너지를 소비했다. 모두 지쳐 버렸다. 또다시 시간과 이닝제한의 덫에 걸리지 말라는 보장도 없다. 박진감이 넘쳐야 할 한국시리즈가 지루한 체력싸움과 인해전술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병풍 파문에도 불구하고 스탠드에 다시 일고 있는 야구 열기마저 끊어놓을 지 걱정이다.
KBO는 대답해야 한다.
김병주기자 bj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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