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은 민간인이 중부전선에 놓여진 3중 철책선을 잇따라 자르고 월북했다고 밝혔지만 성급하고 무리한 결론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이번 사건으로 우리 군의 허술한 경계태세가 완전히 노출됐다는 점에서 파장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군과 국가정보원, 경찰 등으로 구성된 합동신문조는 사건 직후인 26일 새벽부터 ▦북한 공작원의 침투 가능성 ▦한국군의 최전방 경계태세를 떠보기 위해 철책만 자른 후 돌아갔을 가능성 ▦북한 주민의 탈북 또는 남한 장병이나 주민의 월북 ▦이동 편의나 풀베기 작업 등을 위해 우리 군이 잘라냈을 가능성 등에 대해 다각도로 분석했다. 이 가운데 장병의 월북 가능성은 해당 부대의 인원변동이 없었다는 사실이 확인돼 가장 먼저 배제됐으며, 이후 종합적인 검토 끝에 남측 민간인의 단독 월북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합신조가 대남 침투가 아닌 월북이라고 보는 근거는 절단 형태가 남쪽에서 북으로 나있고, 발자국과 손자국 등의 방향이 북쪽을 향하고 있으며, 침투와 관련된 특이한 흔적도 없다는 것이다. 또 월북자가 민간인이라고 보는 이유는 절단 형태가 특수훈련을 받은 사람으로 보기에는 너무 조잡하고, 원상복구 수준도 떨어지며, 절단 형태 역시 북한 공작원의 일반적인 전술과 상이하다는 점이다. 북한 특수요원들은 ‘ㅁ자’로 완전히 철조망을 떼내지 않고 ‘ㄴ자’나 ‘ㄷ자’형태로 절단한 후 철조망을 원래 모양으로 철저히 위장한다는 것이 군의 설명이다. 황중선 합동참모본부 작전처장은 "이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한 군과 국정원, 군, 경찰 등의 베테랑 분석가들이 현장 확인과 토의 끝에 내린 결론이므로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러나 민간인이 중국이나 해양을 경유하는 훨씬 안전한 월북 루트 대신, 목숨을 내걸고 철책선과 지뢰밭을 정면 돌파했다는 것은 아무래도 잘 믿어지지 않는다. 민간인이 3중으로 이뤄진 최전방 철책선을 차례로 뚫고 북측으로 넘어가는 것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이 때문에 군 일각에서는 "특수훈련을 받은 북한 공작원이 절단기를 철책선 사이로 밀어넣어 반대 방향에서 자르면 남쪽에서 월북한 것으로 위장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또 고도의 훈련을 받은 대남 공작원들이 침투 흔적을 교란하기 위해 발자국 방향을 거꾸로 낸 전례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의혹보다 더 큰 문제는 민간인이 3중 철조망을 잇따라 자르고 월북하는 최소한 수 시간 동안 우리 군이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침투 훈련을 받지 않은 민간인이 안보의 최일선인 비무장지대와 철책선을 누비고 다녔다면 말 그대로 최전선에 구멍이 뚫렸음을 의미한다. 1995년 현역 장병이 비무장지대와 연결되는 소통문을 열고 월북하거나 96년 민간인이 철책을 넘어 북한으로 간 경우는 있었으나 철책선을 3번씩이나 절단기로 자르고 북으로 넘어간 사례는 한번도 없었다. 이에 따라 군에 대한 대대적인 문책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군 당국이 북한군의 침투 가능성에 대비해 26일 새벽 경기 연천군과 강원 철원군 일대에 각각 발령한 대간첩침투 경계태세인 ‘진돗개 하나’와 ‘둘’도 한바탕 소동에 그치고 말았다. 김정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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