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의미와 가치는 그 느린 대응성과 적은 정보량, 수공업적인 고생에 있습니다." 소설보다 더 허구적인(소설적인) 현실과, 그 현실을 광범위한 정보로 가공해 신속하게 전달하는 미디어의 위력 앞에 점점 왜소해지는 소설의 영향력을 두고 무라카미 하루키가 한 말이다(‘하루키, 하야오를 만나러 가다’에서).그의 말처럼 소설이라는 게 큰 물이 난 뒤 남겨진 것들을 허구적 장치들로 재가공해서 당대성을 발휘하게 하는 것이라면, 공지영씨의 새 소설 ‘별들의 들판’은 어디 더 남은 게 있으랴 싶은, ‘한물 가도 한참 간’ 들판에서 주워낸 것들로 구축된, 지독하게 느린 대응성의 ‘후일담’ 소설이다. 모티프가 80년대 이념적 삶의 잔영이거나, 60년대 파독(派獨) 간호사와 광부의 이야기 등이니 그렇다는 것이다.
이는 작가의 문학적 탐색이 그만큼 집요했고, 건져올린 재료와 그 재료를 현재적 의미로 가공한 솜씨가 만만찮겠다는 의미도 되겠다. 그녀는 "오랫동안(5년이다!) 칼을 놓았다가 이제 어쩔 수 없이 수술실로 들어선 의사처럼 두려워 하며" 쓴 작품이라고 했다. 소설에는 6편의 중단편이 묶여 있다. 독립적으로 읽어도 무방한 작품들인데 연작이라고 하는 것은 작품마다 달린 부제 ‘베를린 사람들1~6’에서 알 수 있듯, 서사의 주된 공간이 그 곳이기 때문이다. 한 시대, 이념적 갈등과 화해의 단골 무대로 군림했던 그 도시의 알레고리가 그의 소설에서는 이념을 넘어 삶과 사랑의 공간으로 확장되고 있다.
‘빈 들의 속삭임’은 남편의 폭력에서 벗어나고자 이혼을 선택한 뒤, 전남편에게 맡겨두고 온 아이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던 한 여인이 10년 만에 아이를 만나는 이야기다. 여인은 자신이 탈출했던 그 억압적 현실, 혹은 모성부재의 소외감을 못견뎌 실어증에 걸린 아이에게, 임신을 확인했던 순간의 희열과 행복을 이야기한다. 그 조용한 감정의 전이는 아이를, 또 죄책감과 전남편에 대한 증오에 시달려 온 여인을 고해 뒤의 평화와 같은 용서와 화해로 나아가게 한다.
‘열쇠’는 민족적 정체성과 성적 지향을 두고 혼란을 겪는 이민2세대 젊은 여인과 신학을 공부하러 온 젊은 신부의 미묘한 교감, 성공한 노년의 여인이 토로하는 남편에 대한 애증 등을 통해 삶의 모든 국면에 보이지 않게 작동하는 사랑의 다양한 흔적들을 전하는 작품이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 때문에 끌려왔다고 생각했던 거, 자기가 눈치 보았다고 생각하는 거, 다른 게 아니라 실은 그게 사랑이고, 그게 소망이라는 걸… 나, 그 때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했지.’ 섬세한 감정의 결을 더듬다가도 무심한듯 멀어져 깊이 관조하는 그녀의 흡입력 있는 글은 다소 통속적이고 작위적이라고 여겨질 만한 대목들에서 오는 찜찜함을 중화해 독자들을 감동하게 만드는 힘일 것이다.
‘귓가에 남은 음성’은 80년 광주항쟁의 현재적 의미를 당시 현장을 취재했던 독일의 저널리스트 힌츠 페터씨의 만년의 삶을 빌어 되짚고 있고, 중편인 ‘별들의 들판’은 어머니의 삶을 추적하는 딸의 행적을 따라가며 70년대 경제의 한 밑천이었던 파독 근로자들의 신산한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하지만 두 편 모두 단순히 퇴행의 회고조에 머물지는 않는다. 독일에 사는 자칭 40대의 ‘B급 좌파’가 ‘예수를 배반한 유다처럼 쓰라리고 서러운 심정’으로 써 보낸 편지형식을 빈 ‘귓가…’에서는 ‘386세대’로 불리는 세대의 슬픈 자화상을 확인할 수 있다면, 표제작인 ‘별들의…’ 에서는 억압적 환경에 내던져진 한 자유로운 영혼의 삶의 궤적을 시대적 아픔으로, 인간실존의 고통으로 더듬게 된다.
"상처 받은 삶, 삶의 상처들을 서로 보듬어 안을 수 있는 여유와 온기를 나누고 싶었어요." 그녀를 만난 서울 인사동의 한 찻집 마당에 감이 빨갛게 익고 있었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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