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이름 앞에 ‘요절작가’라는 수식어가 붙으면 괜히 눈길이 한번 더 간다. 1960년대 미국 현대미술의 우상으로 꼽히는 독일 출신의 여성작가 에바 헤세(1936~1970)도 그렇다. 헤세는 조각의 재료로 상상조차 못했던 고무호스, 직물, 철사 등으로 작업한 작품들로 현대미술에 충격파를 던지며 여성 아티스트로서 자신의 존재를 깊게 각인시켰고, 짧지만 굵었던 삶 때문에 그녀는 전설로 남았다. 나치 치하 독일에서 태어나 가족과 함께 3세 때 미국 뉴욕에 정착한 그가 예일대 미대를 졸업한 뒤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한 기간은 10년 남짓. 너무나도 짧은 생애 탓인지 한국에서는 대중적인 작가는 되지 못했다.국제갤러리에서 11월19일까지 열리고 있는 ‘변형-독일에서의 체류 1964~65’전은 오스트리아 빈의 쿤스트할레, 스위스 취리히의 하우저&비르트를 거쳐온 순회전으로, 아시아에서 처음 열리는 헤세의 개인전이다. 60년대 중반 헤세가 독일에서 머문 15개월 동안 작업한 회화, 드로잉, 콜라주, 조각 등 50여점을 선보이고 있다. 헤세의 작품세계 전반을 꿰뚫어보려는 욕심이 있는 관람객이라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독일 체류가 작품 경력에 미친 여파를 감안하면, 이번 전시는 그녀 작품의 큰 줄기를 파악하기에 충분하다.
독일인 기업가의 초청을 받아 조각가인 남편 톰 도일과 함께 독일 에센 인근지역의 버려진 텍스타일 공장에서 창작활동을 하는 동안 헤세의 작품세계는 엄청난 변형을 겪는다. 이전에 주로 했던 회화 드로잉의 평면작업에서 콜라주 조각 등의 입체작업으로 전환했고, 내용에서도 구상적 요소들이 점차 사라지고 선적이고 단색조의 미니멀리즘적인 요소들이 강해졌다. 풍선, 고무호스, 그물, 밧줄, 라텍스 같은 비정통적 재료를 사용하는 파격과 실험성으로, 작가로서 주변부에서 중심으로 진입하는 토대를 형성했다. (02)735-8449 문향란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