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21일 새벽 서울중앙지검 컴퓨터수사부 소속 수사관들이 국내 유수의 반도체 제조업체 A사의 전직 연구원 김모(35)씨 집 앞에 모여들었다.A사의 반도체 웨이퍼 검사장비 운용에 필요한 핵심 기술자료가 유출됐다는 국가정보원 산업기밀보호센터의 첩보가 날아든 지 엿새 만에 관련 사실을 확인, 김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한 직후였다.
동이 트고 이른 아침 김씨 집 앞에 이삿짐 차가 도착하는 등 낌새가 수상하자 수사관들은 서둘러 김씨를 체포했다. 검찰청사로 압송된 김씨의 소지품에서는 23일 오전 출발 예정인 미국행 비행기표가 발견됐다. 이틀 만 검거가 늦었어도 국내 산업에 수천억원의 피해를 가져올 중요 산업기밀이 고스란히 해외 경쟁회사에 넘어갈 뻔한 상황이었다.
1996년 말부터 A사 반도체 제품개발본부 실험기술팀에서 근무해 온 김씨는 10월1일자로 외국 경쟁회사 I사로의 전직을 확약받고 이민수속까지 마친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는 올 4~9월 다섯 차례에 걸쳐 웨이퍼 검사기술 관련 프로그램 330여개를 자신의 개인 홈페이지 계정에 전송해 놓은 상태였다.
반도체 제조 중간재인 웨이퍼의 불량여부를 검사하는 웨이퍼 검사기술은 판정의 정확성에 따라 회사 생산성과 매출에 큰 영향을 미치는 핵심기술로, 개발비용만 50억원에 이른다. 특히 A사의 웨이퍼 검사장비는 반도체 업계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어 이 장비를 운용하는 고유의 기술이 유출됐다면 어느 반도체 회사에서나 손쉽게 활용 가능해 피해는 수천억원에 달했을 것이라고 검찰은 밝혔다.
김씨의 이메일 계정 등에 대한 압수수색 결과, 다행히 I사로 관련 기술이 넘어가지는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검찰은 25일 김씨를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검찰은 또 최근 핵심기술 유출사범을 집중 단속한 결과, 국산 반도체 장비 제조업체인 B사 개발자료의 해외 유출을 시도한 신모(32)씨를 불구속기소하고, 온라인 게임업체 C사가 개발한 출시 직전의 게임관련 소스프로그램을 유출한 전 연구개발팀장 이모(26)씨 등 3명을 구속기소했다.
B사는 국책사업 참여업체로 선정된 첨단기술 보유회사이며, 이 회사의 300㎜ 웨이퍼 개발자료 등 핵심기술은 경쟁회사에 유출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C사는 게임자료 유출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만, 중국 등과 진행해 오던 100억원 상당의 수출상담이 중단되는 등 400억원의 피해를 입었다고 검찰은 밝혔다. 김영화기자 yaa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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