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의 수도이전법 위헌 결정에 대해 "누구도 법적 효력에 대해서는 부정하지 않을 것"이라고만 언급, 모호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어제 국회 시정연설에서 국무총리를 통해 밝힌 이 같은 입장은 헌재 결정 이후 나흘 만에 나온 것이나, 헌재에 대한 승복의 의사를 명백히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헌재 결정을 부정하는 것은 헌법과 법치의 부정이나 마찬가지이니 그 법적 효력을 인정한다는 말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런데 노 대통령의 언급은 여기서 그쳐 버렸다.가뜩이나 헌재에 대한 폄하 비방이 계속되고 그 결정을 의문과 쟁점의 영역으로 격하하려는 시도가 정부 여당 내에서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대통령의 입장까지 이와 유사한 분위기를 연상시키는 것은 큰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잘못하면 헌법의 권위나 헌정체제라도 얼마든지 도전하고 흔들어도 된다는 위험한 풍조를 조장할 수도 있다.
노 대통령이 헌재 결정 내용을 정책적으로 반드시 지지하고 동조할 필요는 없다. 또는 불만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 삼권분립 상 헌법기관의 최종 권위와 지위에 흔쾌한 승복을 명시하는 것은 그런 차원과는 전혀 별개다. 그 것은 민주체제 유지와 수호를 위한 대통령의 의무이다. 노 대통령은 "헌재 결정 이유에 대한 다양한 의견과 평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라고 단서를 달기도 했다. 대통령이 그런 평가들에 공감한다는 뜻을 밝히고 있는 것인지 납득이 어려운 기대밖 언사다.
오히려 국민다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무리한 정책 강행으로 빚어진 혼란에 대해 사과 한마디 쯤 있어야 했다. 대통령은 지지자들만을 위한 자리가 아니다. 이래서는 후속 논의에서도 국민의 이해를 얻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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