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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인간 아버지 곁 4년을 한결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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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인간 아버지 곁 4년을 한결같이…

입력
2004.10.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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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이젠 살 좀 찌셔야겠어요. 오늘도 물리치료 받으셔야죠."25일 오전 11시 전남 순천시 조례동 순천병원 316호실. 뇌출혈로 쓰러져 혼수 상태인 아버지(48)를 침대에서 단숨에 들어올려 휠체어에 앉히는 박철승(19)군의 수다스러움에 조용하던 병실이 갑자기 왁자지껄해졌다.

잠시 후 병원 지하 1층 물리치료실. "아줌마, 아저씨는 좀 괜찮아지셨어요? 우리 아버지는 많이 좋아지셨는데…." 물리치료를 위해 아버지와 함께 내려온 이 곳에서도 박군의 웃음소리와 수다는 끊이질 않았다.

병원 관계자들과 다른 환자 가족들은 박군을 수다쟁이가 아닌 "천하의 효자"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병든 아버지를 향한 박군의 효행이 참으로 지극하기 때문이다. 겨우 눈만 뜰 수 있을 뿐 식물인간이나 다름없는 아버지를 병간호한 게 벌써 4년째. 고교 2학년이던 2001년 10월 택시운전으로 생계를 꾸려가던 아버지가 새벽 운전 중 갑자기 뇌출혈로 의식을 잃고 쓰러진 뒤부터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아버지 곁을 지켰다.

7년 전 부모가 이혼한 뒤 큰 누나(27)는 시집가고 작은 누나(24)는 직장 생활하는 처지라 혼자서 세끼 식사준비와 대소변 등 병수발을 하다 보면 하루 해가 너무 짧아 설사 외출을 해도 2시간 이상을 넘기지 못한다.

사고 직후 아버지와 함께 살던 월셋방을 빼고 병원생활을 시작한 박군은 근로복지공단에서 지급되는 간병인 보수 100여 만원으로 병원 식당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 다행히 아버지 입원·치료비는 산업재해로 보험처리돼 큰 부담은 없다.

"아버지와는 친구처럼 지냈습니다. 그래서 더욱 아버지 곁을 떠날 수 없어요. 병원에서는 낫기 힘들 것이라고 하지만 저는 아버지가 반드시 병석을 박차고 일어나실 거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힘들지만 수다도 떨면서 하루하루를 즐겁게 보내고 있습니다."

병수발 중에도 틈틈이 공부해 올해 순천대 농업경제학과를 합격한 뒤 곧바로 휴학한 박군의 꿈은 의사이다. 박군은 의대 진학을 위해 수능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박군은 "아버지 사고와는 상관 없이 고교 때부터 의사가 되는 꿈을 키워왔다"며 "꼭 의사가 돼서 아버지 곁을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순천=안경호기자 k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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