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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들 내면에 자리잡은 惡의 씨앗을 틔워드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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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들 내면에 자리잡은 惡의 씨앗을 틔워드리죠"

입력
2004.10.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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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사등이라는 신체적 기형과 모성애 결핍이라는 정신적 불구가 겹쳐 몸서리칠 만큼 비극적인 운명의 ‘리차드 3세’는 배우라면 누구나 탐낼 만한 인물이다. 여인을 차지하기 위해서라면, 권력을 잡기 위해서라면, 형제도 조카도 기꺼이 죽음으로 몰고 가는 그는 인간 내면에 숨어있는 악의 본성을 한데 응집시켜놓은 듯한 개성적 캐릭터다.배우 안석환(45)은 11월5일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막을 올리는‘꼽추, 리차드 3세’에 연기인생을 걸었다고 말한다. "20년 가까이 연극을 해왔는데, 여태까지 해온 작업들을 모두 합쳐놓은 것 만큼 힘이 듭니다. ‘리차드 3세’로 다시 태어나고 싶습니다."

셰익스피어의 사극 ‘리차드 3세’는 1995년 국내 초연된 뒤, 9년 만에야 다시 공연될 정도로 까다롭고 두려운 작품이다. 무엇보다 연출가 한태숙씨가 "관객들 내면에 있는 악의 씨앗을 꿈틀거리게 만드는 악인"이라고 말하는 리차드 3세를 소화할 배우가 있느냐가 관건이었다. 그 배우로 안석환이 낙점돼 타이틀 롤을 맡은 이번 무대는 셰익스피어를 해체한 ‘레이디 맥베스’로 호평받은 한태숙의 연출에다 지난해 ‘보이체크’에 참여한 알렉산드르 쉬시킨(러시아)의 무대미술까지 합쳐져 더욱 기대를 모으고 있다.

안석환은 요즘 배역이 주는 무게감과 깔끔하면서도 깐깐한 한태숙씨의 연출 스타일에 긴장을 늦출 틈이 없다. 하루에 티셔츠 3벌을 땀으로 적셔낼 정도로 연습량도 많고, 곱사등에 왼팔과 다리를 뒤틀어 불구의 몸을 만들고 멀쩡한 한쪽 다리로만 지탱하고 서 있느라 옆구리와 무릎은 늘 쑤신다. 연습 초반 ‘남자충동’의 목포 건달인 장정의 냄새가 남아있다는 연출가의 지적을 받고는 밤마다 가위에 눌렸다고 한다. 로렌스 올리비에나 알 파치노 같은 대배우들이 리차드 3세를 연기했지만, 남의 것을 흉내내기 보다 자신만의 인물을 만들기 위해 그들의 연기를 참고하지도 않고 있다.

영화, TV드라마 조연으로 빈번하게 만날 수 있는 얼굴이지만, 안석환하면 ‘고도를 기다리며’의 에스트라공과 ‘남자충동’의 장정을 떠올리게 마련. 그래서 더욱 이전에 연기한 캐릭터와는 차별적인 리차드 3세를 만들어내려 한다. ‘에스트라공’은 토끼 같고, ‘장정’은 시라소니를 닮았다면, ‘리차드 3세’로부터는 하이에나를 떠올린다. "하이에나는 상체가 큰 반면, 하체가 작고 앞다리로 추진력을 얻기 때문에 뛰는 모습이 불구의 몸을 연상시키죠. 게다가 암컷도 수컷 호르몬을 갖고 있어 모성이 결핍돼있고 양면성 때문에 악마성을 지닌 동물로 여겼구요."

그가 창조하는 악인에서는 선악의 선명한 대립구도를 읽어내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악을 직선적으로 그려내기보다, 악을 행할 수밖에 없는 당위성을 관객에게 이해시키고 싶다"는 안석환. "모성 결핍과 신체기형에서 비롯된 폭력성을 태생적으로 지닌 리차드 3세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전쟁에서 싸워 이기고 왕위를 탐할 수밖에 없었다"고 분석한다. 오로지 자신만을 위했던 절대악의 화신 리차드 3세. 그런 그도 안석환의 몸을 빌면 동정과 연민을 불러일으키며 관객들을 살인행각의 공모자로 몰아갈 것만 같다. 11월28일까지.

문향란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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