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가 나라를 살린다. 신행정수도 특별법은 위헌이라고 선언한 헌법재판소를 온갖 거친 말로 비방하는 것에 오래된 책 제목이 생각났다. 어느 헌법학자가 미국 연방대법원 비사(秘史)를 소개한 책에 붙인 제목이다. 법치국가에서 대법원은 나라의 균형을 잡는 막중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이렇게 제목 붙인다는 설명이었다.미국 대법원과 같은 위헌심사 권한을 지닌 헌재 재판관들이 나라를 살렸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해결책이 없을 듯하던 수도이전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과 혼란을 정리할 가닥이 잡힌 것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헌재를 터무니없이 욕하는 이들도 사리를 제대로 살폈으면 한다.
나는 신행정수도 건설을 지지한다. 서울 집중의 폐해를 줄이고 지방을 살리려면 한층 대담한 정책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주위의 반대의견에 왕따 되다시피 할 때는 30년 전 박정희 대통령이 강행하지 않은 것을 내심 아쉽게 여겼다. 그러나 정부가 지혜와 정력을 다 쏟아도 힘겨울 국민 설득에는 건성인 채, 사회지배세력 교체를 꾀한다는 속내까지 내보인 의도를 헤아리기 어려웠다. 여론이 바라는 국민투표로 승부를 가릴 요량이 아니면, 개혁 명분에 취한 오만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이런 마당에 헌재가 내놓은 위헌 결정은 비록 뜻밖이었지만 공감했다. 복잡한 법리에 앞서, 역사적 수도 서울을 옮기는 것은 국민의 결단이 필요한 헌법적 문제로 본다는 판단에 수긍하는 것이다. 따라서 국민의 동의 여부를 직접 묻지 않은 채 국회 입법만으로 추진하는 것은 국민의 기본권인 참정권을 침해한 것이어서 위헌이라는 결론에 찬동한다.
빈약한 헌법 지식에 기대 헌재 결정의 법리를 이리저리 풀이해 보았다. 소수의견처럼 단순히 국민투표를 거치지않아 위헌이라고 선언했으면 일반국민은 훨씬 쉽게 납득했을 것이다. 그러나 헌법에 규정한 국가중요정책의 국민투표 회부권은 대통령을 위한 것이다. 국민에게도 국민투표 요구권이 있다고 하면 확대해석 논란이 훨씬 치열했을 것이다. 이 때문에 수도는 서울이라는 인식을 법적 확신으로 평가, 관습헌법 논리를 택한 게 아닌가 싶다. 이에 따라 수도이전에는 헌법개정이 필요하다는 결론에는 위헌결정을 반기는 이들도 고개를 갸우뚱하지만, 달리 국민의 뜻을 직접 확인하는 국민투표를 강제할 방법은 없으니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법률가와 학자들이 법리적 타당성을 논란하는 것은 이상할 게 없다. 문제는 정부와 국회 등 헌법기관에 속한 이들이 관습헌법 개념이 더러 생소한 것을 빌미로, 헌법이 규정한 헌재의 고유한 역할과 권한까지 무시하는 말을 함부로 내뱉는 데 있다. 또 진보적 시민단체와 언론이 민주헌법질서의 여러 원칙에 대한 교과서적 상식과 국민 여론마저 비웃듯이 헌재 결정이 반민주적이라고 강변하는 것이다. 아무리 대의명분이 훌륭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헌재 결정과 헌재를 매도하는 것은 잘못이다.
헌재가 국회 입법권을 침해했느니, 헌법을 훼손했느니 떠드는 것은 몰상식하다. 사법독재를 우려한다는 말은 한층 우습다. 헌재 결정의 정당성은 어떤 논리로도 부정할 수 없다. 이건 수도이전에 대한 찬반 또는 정부 지지 여부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서로 다른 가치 기준으로 분별하는 자세가 절실한 것이다. 이를테면 유일하게 헌법소원 각하의견을 낸 헌재 재판관은 언뜻 개혁적이지만, 국회 및 정부 권력과 대립하는 국민의 기본권을 좁게 해석한 점에서는 보수적이다. 이런 사리를 헤아려야 한다.
미국 헌법을 기초한 알렉산더 해밀턴은 사법부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의회의 권한 남용을 감시, 헌법 원리에 어긋난 법률을 무효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통해 국민과 의회 사이를 중재하도록 사법부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비춰보면, 우리 헌재도 사회적 갈등을 풀고 나라의 균형을 잡는 역할에 충실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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