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연말이 되면 반복되는 것이 이런저런 ‘올해의 상’이다. 주요 단체들은 ‘올해의 배우상’, ‘올해의 기업인상’ 등 여러 분야에서 최고를 뽑아 발표한다. 아직 연말까지 두 달쯤 남아 있지만 ‘올해의 코미디상’만은 이미 확정된 것이 아닌가 싶다. 수상자는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의 좌승희 원장이다.내가 그 많은 코미디언들을 제치고 경제학자가 ‘올해의 코미디상’ 수상후보자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좌 원장이 최근 발효된 성매매 특별법에 대해 한 기가 막힌 발언 때문이다. 성매매를 막는 법이 좌파적 정책이라고 비판한 것이다. 성매매방지법이 좌파라니! 우리 사회가 최근 하도 사생결단식 대립으로 가고 있으니 웃기는 이야기를 해 국민들을 한번 웃겨 보자는 의도가 아니었다면,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박사학위까지 받고 한국 재계의 싱크탱크를 지휘하고 있는 학자가 이 같은 수준 이하의 무식한 발언을 했겠는가?
물론 대표적인 진보적 국가인 스웨덴이 몇 년 전 강력한 성매매방지법을 제정해 성매매를 규제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선진국 중 가장 보수적인 나라라고 할 수 있는 미국 역시 선진국 중 성매매를 가장 강력하게 단속하고 있다. 대신 유럽의 여러 진보적인 나라들은 성매매도 하나의 직업으로 인정해 성매매를 합법화하고 있다. 긴 말 필요 없이, 세계적으로 여성의 인권을 강조하는 진보적 페미니즘만이 아니라 극우적인 기독교 근본주의도 성매매에 가장 앞장서 반대하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을 모를 리 없는 좌 원장이 ‘성매매 규제=좌파’라는 초등학교 수준의 주장을 했다는 것은 국민을 한번 웃겨 보자는 의도가 있었던 것 외에는 달리 해석이 되지 않는다.
특히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좌 원장이 성매매 특별법을 좌파적 정책이라고 본 이유이다. 좌 원장에 따르면 성매매 특별법처럼 "자신이 믿는 도덕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남의 자유를 규제하는 것은 좌파적 생각"이라는 것이다. 언뜻 보기에 그럴 듯한 주장이다. 그러나 너무 문제가 많은 주장이다. 이 논리에 따르면 낙태는 살인이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라는 자신의 신념을 실현하기 위해 남의 자유, 즉 낙태에 대한 여성의 선택의 자유를 규제하려는 기독교 근본주의야말로 좌파다.
한 발 더 나아가 이 논리에 따르면 반공이라는 자신이 믿는 도덕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남의 사상의 자유를 규제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처형해 온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등 역대 독재정권, 그리고 아직도 이 같은 규제의 무기인 국가보안법을 고수하려는 한나라당 등 극우냉전세력이야말로 좌파다. 그리고 자신이 믿는 도덕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남의 자유를 규제하려는 좌파적 정책인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기 위한 투쟁에 좌 원장과 전경련이 왜 앞장서지 않는지 기이하기만 하다.
좌 원장의 이번 발언은 좌 원장 개인의 일회성 해프닝을 넘어서 우리 사회에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이번 발언은 좌파와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노무현 정부에 대해 시도 때도 없이 좌파라고 공격하는 등 이미 정도를 벗어나 논리도 없고 정신분열증 수준에 이른 우리 사회의 극우냉전세력의 색깔론이 어느 수준에 이르렀는가를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 함의가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긍정적이다. 그 이유는 그 동안 극우냉전세력이 유포해 온 색깔론이 위험수위와 정점을 넘어서 이제 웃음거리밖에 되지 않는 코미디 수준으로 희화화(戱畵化)되는 단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색깔론은 무엇이 좌파인가 하는 좌파의 의미를 희화화한다. 그리고 이러한 좌파의 희화화는 좌파가 아니라 오히려 이를 주도하고 있는 극우냉전세력이 얼마나 웃기는 사람들인가를 보여주는, 극우냉전세력 자신의 희화화에 다름 아니다.
손호철 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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