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관습헌법’이론으로 신행정수도건설 특별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린 후 우리사회 곳곳의 갈등 당사자들이 너도나도 헌재로 달려갈 기세다.사학재단들은 정부여당이 상정한 사립학교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사유재산권 침해 등의 이유로 헌법소원을 내겠다고 벼르고 있고, 호주제 폐지를 반대하는 유림 인사들은 헌재의 관습헌법 논리에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호주제 폐지의 위헌 근거라도 새삼 찾아낸 듯, 헌법소원을 거론하고 나섰다. 심지어 성매매 업주들은 성매매 특별법이 성매매의 역사적 ‘관습’을 부정하는 것이라며 헌법소원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가히 ‘헌재 만능시대’가 도래한 느낌이다. 그러나 헌재 결정문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이들의 ‘기대’는 자기 논에 물대기 식 해석에 가깝다. 관습헌법의 효력을 성문헌법과 동일하게 인정할 수 있느냐는 논란은 별개로 하고, 헌재는 결정문에서 국가정체성과 관련된 것들을 헌법사항으로 규정했다. 수도 외에도 국명, 우리말과 글, 영토, 주권의 소재 등을 정하거나 밝히는 것을 예로 들었다. 따라서 지금 헌법소원 대상으로 거론되는 사안들은 적어도 헌재 결정의 본질에서 벗어나 있다.
국민들이 헌재를 적극 이용하는 것은 권리의식의 성장이라는 점에서 반길 일이다. 하지만 대통령 탄핵사건에서 보았듯이 정치적, 정책적 갈등이 생길 때마다 헌재로 끌고 가려는 현상은 비정상적이다. 정치적 갈등이 사법적 갈등으로 연장되는 것은 국민을 피곤하게 하고 극심한 국력 소모를 초래한다. 정치적, 사회적 합의구조의 복원이 절실하다. 헌재의 구성을 다양하게 바꿔야 한다거나, 헌재 기능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등의 논의는 그 다음이다.
이진희 사회1부 기자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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