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내기 회사 앞에 미국시장 ‘활짝'1981년에는 의미 있는 일이 특히 많았다. 당시 따져 보니 마이크로프로세서가 나 온지도 10년이 지났다. 내게는 아쉬운 세월이었다. 기선을 잡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게 새삼 가슴을 짓눌렀다. 그렇다고 내가 무작정 뒷짐만 지고 있었던 건 아니다.
삼보가 만든 최초의 컴퓨터는 남 보기에는 보잘 것 없었다. 81년 1월이었다. 철판을 구부려 만든 박스에다 모니터 대신 TV 세트를 얹은 제품이었다. 우리의 얼과 땀이 담긴 ‘작품’이다. 사람들은 고맙게도 100만원이란 거금을 주고 이를 사기 시작했다.
두 번째 제품은 전략을 바꿨다. 애플과 호환할 수 있게 만들기로 했다. 이번에는 금형을 파 모양도 예쁘게 하고 애플을 위해 개발된 여러 소프트웨어를 장착했다. 한글 워드 프로세서인 보석글을 넣어 쓸모도 많았다. 이 컴퓨터는 디자인이나 기능에서 손색이 없었다. 우리는 자신감을 갖고 세계 시장을 두드렸다. 뜻밖에 캐나다에서 먼저 주문이 들어왔다. 소량이나마 81년 11월 컴퓨터를 수출했다. 한국 컴퓨터 역사에 빛나는 쾌거였다.
81년 여름에는 세계 컴퓨터 역사상 매우 중대한 사건이 일어났다. IBM이 마이크로컴퓨터 시장에 뛰어든 것이다. IBM은 종전의 방법과 전혀 다른 비즈니스 모델로 시장을 공략했다. 우선 자기 회사에서 만든 칩 대신 인텔의 마이크로프로세서칩을 사용했다. 또 자기가 개발한 기본 소프트웨어를 놔두고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만든 MS-DOS를 채택했다.
이 방식은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나는 IBM이 우리에게 어떤 기회와 위험을 가져 다 줄지 곰곰 따져봤다. 그리고 무릎을 탁 쳤다. 이유는 간단했다. 삼보도 IBM처럼 MS-DOS와 인텔의 반도체칩은 얼마든 지 구할 수 있다. 그런 다음 IBM과 호환 가능한 컴퓨터를 만들어 팔 수 있다고 생각했다. IBM에 특허 사용료만 내면 그만이었다.
IBM은 81년 8월 내놓은 마이크로컴퓨터 이름을 퍼스널 컴퓨터(Personal Computer)라고 지었다. 이때부터 PC라는 말이 생겨났다. 같은 방식으로 만든 삼보의 마이크로컴퓨터도 PC라 부르게 됐다. 자연히 마이크로컴퓨터라는 말은 사라지고 대신 PC가 일반용어가 됐다.
당시엔 미국 등 세계 각국에서 앞을 다퉈 이 방식으로 PC를 만들었다. 내로라하는 회사들과 피나는 경쟁을 해야 했다는 뜻이다.
그 무렵 삼보가 PC업체로 대성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미국 최대의 컴퓨터 판매망인 컴퓨터랜드에서 우리 제품을 사겠다고 결정한 것이다. 컴퓨터랜드는 미국 전역의 요소 요소에 수백개의 컴퓨터 가게를 갖고 있었다. 그들이 파는 컴퓨터 중에는 IBM 기종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 사람들은 IBM 컴퓨터를 취급하는 것보다 삼보 제품을 사서 팔면 휠씬 이익이 많이 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에게 생산 공급을 의뢰했다.
이 결정이 간단히 이뤄진 건 아니다. 그들은 전세계 컴퓨터 제조업체들을 모두 다 점검했다. 그리고 20개를 추려내 정밀 검사했다. 그 다음 또 몇 개를 골라 협상을 한 다음 최종적으로 삼보를 택했다고 한다. 이 프로젝트만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세계에서 IBM과 애플 다음으로 컴퓨터를 많이 생산하는 회사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에 힘이 절로 났다. 그러나 세상 만사 쉬운 게 없었다. 뜻하지 않는 복병이 불쑥 튀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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