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죽게 생겼다. 책임져라, 살려내라." "대체농지 사면서 낸 세금 모두 물어내라."24일 오후 신행정수도 예정지였던 충남 연기군 남면 종촌리 성남고교 앞 공터. 붉은 머리띠를 두른 농민들이 헌법재판소와 한나라당을 상징하는 높이 3m의 대형 허수아비에 불을 당겼다. 허수아비 위로 불길이 치솟자 "행정수도 재추진하라""지역경제 말살하는 한나라당 타도하자"는 등의 구호가 이어졌고, 주민대표 3명이 나서 삭발을 했다. 잠시 후. 김춘배 연기군 체육회 부회장이 즉석에서 ‘충청권 단결’이라는 혈서를 쓰자 집회장 분위기는 한동안 술렁였다. 삭발한 안원종(49^농업)씨는 "땅이 수용된다고 해서 주민의 절반 이상이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씩 대출을 받아 타 지역에 농사지을 땅을 샀는데, 이제와 없던 일로 하자니 이대로 다 죽으라는 얘기냐"라며 "지금 상황은 우리에게 무정부 상태나 마찬가지"라고 울분을 터뜨렸다.
분을 참지 못한 일부 농민은 집회 도중 집으로 달려가 트랙터를 끌고 나와 밭을 갈아엎기도 했다. 육해일 남면농민회장은 "헌재 재판관들이 망령이 든 것 같다"며 "관습헌법을 이유로 신행정수도특별법이 위헌이라면 우리의 전통 농업을 죽이는 WTO(세계무역기구)와 FTA(자유무역협정) 체결도 위헌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민들은 ‘연기^공주 신행정수도건설 무산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어 행정수도 예정지 주민들의 물질적, 정신적 피해를 보상할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이 나올 때까지 집회와 시위를 계속 벌여나가기로 결의한 뒤 일단 2시간여 동안의 집회를 마쳤다.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 위헌 결정에 대한 충청권 주민들의 반발기류가 심상치 않다. ‘아닌 밤중에 날벼락’이상의 정신적 충격 뿐 아니라 금전적으로도 상당수 주민들이 큰 피해를 입게 돼 그 파장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특히 직격탄을 맞은 연기·공주 지역에서는 빚으로 대체농지를 구입해 놓은 주민이 많아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빗발치고 있다.
연기군 남면 고정리의 임인수(60)씨 역시 고향을 떠나야 할 처지에 놓였다. 임씨가 신행정수도 예정지 안에 있는 논 1,800평을 판 것은 지난 3월. 예정지 주변 땅이 평당 3만원에서 20만원까지 올라 고향 인근은 엄두도 못내고 부여군 규암면에 대토농지로 3,100평의 논을 샀다. "부여땅을 팔아 다시 땅을 살수도 없고. 정부말을 철석같이 믿은 내가 돌아도 한참 돌았지." 임씨는 땅을 치며 눈물을 떨궜다.
이 마을에는 임씨와 같은 상황에 처한 사람들 5명이 더 있다. 연기군 남면 갈운리 임정철(54)씨는 "토지수용을 예상하고 인근 지역에 8억원을 주고 집과 축사(소)를 사들이면서 농협에서 3억원을 빌렸다"며 "매달 이자만도 500만원이 넘는데…, 입에 풀칠할 일이 걱정"이라고 하소연했다.
남면농협 정창규 조합장은 "국무총리까지 내려와서 수도이전을 약속했는데, 이제 와서 딴소리니 우리더러 어쩌란 말이냐"며 "정부 차원에서 농민들에게 무이자 장기상환 등의 대책을 마련해 줘야 농민이나 금융기관 모두 숨이라도 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기=이준호기자 junhol@hk.co.kr
전성우기자 swch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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