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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에세이/ 우리 아빠의 땜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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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에세이/ 우리 아빠의 땜통

입력
2004.10.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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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현아, 이리 와서 아빠 머리 한번 잘라 봐라." 택시 손님이 없어 일찍 퇴근하신 아빠의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정신이 혼미해졌다. 미용대학에 들어간 지 1년도 안돼 한참 커트를 배우는 내가 어떻게 아빠 머리를 자를 수 있단 말인가. 아빠는 고등학교 때 무서운 선생님보다 더 무서운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만큼 무뚝뚝하시고 엄하셨다. 거기다 커트를 완벽하게 배운 상태도 아니고 수업도 빼먹은 적이 많아서 간신히 흉내낼 정도였기 때문이다.약속 있다고 후다닥 나가버릴까, 아니면 아파서 병원 간다고 할까. 다른 친구들은 수업도 꼬박꼬박 듣고 연습도 많이 해서 가족들 머리는 웬만큼 자를 수 있는 실력 정도는 된 상태였다.

중요한 건 아빠가 내 실력도 그만큼 됐을 거라는 생각으로 시킨 것이다. 아빠를 속여 재료비며 책값이며 타내서 옷 사고 친구들과 놀러 다녔는데 머리를 자르라니….

"아빠 머리 한번 잘라보라니까 뭐 하니." "네, 가위랑 바리깡 챙기고 있어요." 용기를 내 욕실에 의자와 큰 보자기를 준비하자 아빠가 앉으셨다. 간신히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고 자를 준비를 했다. 아빠가 무서웠던 나는 "아빠! 처음이라 못 잘라도 이해해 주세요"하고 말씀 드렸다. 땀으로 범벅이 되고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더웠다.

결국 큰 실수를 하고야 말았다. 빗을 대고 바리깡을 사용했어야 하는데 그냥 쳐서 올린 것이다. 한눈에 알아볼 만한 큰 땜통 하나가 아빠 뒤통수에 자리잡았다. 그 때 엄마가 들어오셨다. "미현 아빠, 지금 얼른 이발소 가서 머리 다시 잘라요" 하셨다. 영문도 모르는 아빠는 뒤도 안 돌아보시고 계속 자르라고 하셨다. 거역할 수가 없어 나는 마무리를 지었다.

거울을 한참 들여다 보신 아빠가 뒤통수에 있는 땜통을 발견하신 듯한 순간, "죄송해요. 아빠, 너무 떨려서 그만…" 하고 말씀을 드렸더니 "이발소에서 자른 거랑 다르네. 사람들이 뭐라 그러면 딸이 잘라준 티 내느라고 마크 새겼다고 하면 되지 뭐. 다음엔 더 멋있게 잘라줄 수 있지? 만 원 벌기 쉽네" 하시는 것이었다. 만 원을 건네 주신 아빠는 "다음엔 공짜로 해 줘야 한다"고 하시더니 방으로 들어가셨다.

그토록 무서운 아빠가 큰 땜통이 생겼는데도 저렇게 흐뭇해 하시다니. ‘아빠, 죄송해요. 제가 꼭 성공해서 아빠 이발만은 평생 책임질게요.’ 그로부터 4년이 지난 지금 나는 헤어디자이너가 되어 열심히 성공을 향해 가고 있다. 힘들 때면 그 때 딸을 자랑스럽게 생각해 주신 아빠의 얼굴을 생각하며 더 노력한다. 오늘 따라 아빠 얼굴이 너무 보고 싶다. 사랑해요, 아빠.

복미현·서울 광진구 화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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