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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헌법은 무엇을 위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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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헌법은 무엇을 위해 있나

입력
2004.10.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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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역사에서 종종 목적과 수단이 뒤바뀌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바로 이것이다"라는 믿음이 곧 그 수단을 목적화하는 것이다. "본말이 전도되었다"는 말이 이럴 때 사용된다.‘국가’라는 존재는 인간이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면서 보다 안전한 삶을 향유하기 위하여 만든 조직이다. 그러나 우리는 ‘국가’ 자체가 목적이 되는 현상을 쉽게 볼 수 있다. 독일의 나치즘, 일본의 군국주의가 그러했으며, 한국의 ‘국민교육헌장’이 그러했다. 왜 대한민국 국민은 왜 꼭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나야만 하는가?

‘경제개발’이라는 신화 역시 수단과 목적이 뒤바뀐 대표적 사례이다. 경제개발은 인간의 행복을 증진시키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개발은 그 과정에서 하나의 목적이 되어 버린다. 오히려 ‘경제개발’이라고 하는 수단을 위해서 ‘인간의 행복’이라는 목적이 희생을 강요 받는다. 근로기준법 사수를 외치면서 쓰러져간 전태일이 그러했으며, 지금 세계 곳곳의 후진국, 체제전환국에서 경제개발이라는 목적 하에 수많은 인권유린이 자행되고 있다.

절대화되어 있는 ‘법’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법은 국가를 합리적으로 이끌기 위하여 구성원들 사이에 합의가 이루어진 하나의 약속이다. 특히 근대 국민국가 이후의 법은 소수 지배자의 의지에 따라 결정되었던 왕정시대의 법과는 큰 차별성을 갖는다. 따라서 국가의 구성원들은 당연히 법을 준수해야 하며, 이를 통해서 자신들이 구성하고 있는 공동체의 안녕과 질서가 유지된다.

그러나 법이라는 것이 절대적인 ‘목적’이 아닌 이상 시대가 변화하고 질서가 바뀌면 새로운 시대적 가치에 맞도록 수정되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법은 인간의 행복을 지키기 위한 목적에 부응하는 수단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 현실에 맞게 법이 바뀌지 않는다면, 그 법은 시대의 변화와 발전을 방해할 수밖에 없다.

우리 국민들에게 헌법의 개정은 ‘부정적 행위’로 인식되고 있다. 20세기 이후 근대적인 질서가 자리잡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땅의 위정자들은 자신들의 정권 연장을 위하여 헌법을 마구 바꾸었다. 발췌개헌, 사사오입개헌, 삼선개헌, 유신개헌. 그리고 지금 우리 국민은 ‘독재의 유산’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치루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1987년까지 경험했던 변화만큼이나 큰 변화를 겪고 있는 1987년 이후 지금까지의 사회변화를 현실의 헌법은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

연말이 되면 올해의 10대 사건이 각 언론매체에 의해 선정될 것이다. 10대 사건 중에 지난 봄의 대통령 탄핵발의 사태와 행정수도 이전 문제가 상위 순위에 오를 것이 틀림없다. 이 모두가 헌법과 관련된 문제이다. 사회현상이 바뀌고,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고 있는데, 사람들의 행복을 보장하기 위한 수단은 변화하지 않고 있다. 국가보안법 문제 역시 이러한 논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국가의 미래를 위한 정책들은 때로 기존의 시스템을 앞서 나가야 한다. 50년대부터 경제개발계획을 입안하고 실행함에 있어서 어느 누구도 그것이 헌법이 규정한 경제활동 상의 자유를 규제한다고 문제 삼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안팎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무역국가로 발돋움하였다. 수단이 목적을 방해하고 있을 때 과감하게 그 틀을 바꾸는 정치적 결단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다. 또한 특정한 법의 위헌여부를 판단하는 헌법 재판소가 정책의 적절성 여부까지 판단할 수는 없다.

연일 언론들은 우리 경제의 어려움을 호소한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국민 개개인의 행복 지수를 높이기 위하여 ‘백년대계’를 수립해야 할 때다. 낡은 수단에 얽매여 목적을 그르치는 일이 더 이상 없었으면 한다.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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