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수도이전법 위헌 결정은 분열됐던 국론을 다시 모으고 혼란에 빠졌던 국정을 안정시키는 기회와 계기가 돼야 한다. 청와대는 물론 여야가 이 점을 인식하고 서로 협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헌재 결정을 존중하고 흔쾌히 승복하는 자세가 긴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정을 책임진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이 헌재 결정 수용을 유보하면서, 헌재가 위헌결정의 근거로 제시한 ‘관습헌법’ 논리를 문제화하고 이를 비판하는 것은 대단히 우려스럽다.헌재 결정은 문제의 끝이 돼야 한다. 이를 문제의 시작으로 삼으려는 기도는 용납될 수 없다. 수도이전의 문제는 국민합의를 도외시한 무리한 국정목표와 불합리한 방법으로 이를 강행하려는 독단에서 비롯됐음을 상기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과 여당은 이로 인한 국정소모와 국민이 겪은 혼란에 대해 사과하고 그런 시행착오를 겸허하게 반성하는 것이 도리다. 아울러 위헌결정이 몰고 온 정치적 행정적 파장과 정책혼선을 빠른 시일 내에 수습하고 합당한 대안을 만드는 데 힘을 기울여야 한다.
노 대통령과 여당으로서는 대통령의 진퇴까지 걸겠다던 핵심 정책의 좌절로 큰 충격에 빠졌을 것이다. 정치적으로 입은 타격도 클 수밖에 없다. 보도대로 수도이전을 국민투표나 개헌 등으로 부활시키려는 등의 대책을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난국탈출이나 상황반전에 집착한 나머지 행여 헌재의 헌법적 권위를 부정, 격하하거나 또 다른 소모와 혼란을 유발할 수 있는 방도는 궁리하지 않는 게 옳다. 노 대통령 스스로가 한때 수도이전에 정권의 명운을 걸었다고 했으나 헌재 결정을 노 대통령의 진퇴 문제로 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또 그래서도 안 된다. 누구보다도 노 대통령과 청와대가 먼저 차분하고 냉정하게 처신해야 한다. 그리고 가장 합리적인 후속 대책 마련과 관리에 나서야 한다.
헌재 결정에 한나라당은 환호했다고 하지만 그럴 입장이 못 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박근혜 대표의 사과 한 마디로 지나칠 일이 아니다. 반대만 외치던 기회주의와 정치적 책임을 정책대안과 국정기여로 국민에게 보상해야 한다.
헌재 결정의 교훈은 국민적 합의와 설득, 갈등관리의 과정이 국정운영에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우치고 있다. 특히 노 대통령이 이번 좌절에서 깨달아야 할 점이다. 당장 국가보안법 개폐를 비롯한 쟁점 법안 처리부터 신중한 토론과 충실한 여론수렴으로 무리 없이 이루어져야 함을 다시 강조한다. 정권의 독선과 독단, 이념형 국정순위를 국민은 지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기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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