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속으로 이준희 지음 문이당 발행·8,800원사람만큼, 사람이 세상 살아가는 모습만큼, 매력적인 이야기의 주제를 찾기도 힘들다. 과장이랄 것도 없이 소설이든 시든, 영화나 연극이든 모든 문학예술 창작의 한가운데에는 늘 사람 이야기가 있다. 신문·방송에서 인터뷰나 사람 관련기사를 즐겨 다루는 것도 그 때문이다. 아니, 따지고 보면 언론의 기사가 거의 전부 사람에 관한 것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언론의 인터뷰 대상은 크게 두 종류다. 명사(名士)와 명사 아닌 사람. 유명인의 이야기를 훨씬 자주 보지만, 갈수록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하지 않은 삶이 주목 받는 경우가 늘고 있다. KBS 2TV ‘인간극장’의 조용한 인기도 이런 세태를 반영한 것이다.
한국일보 이준희 논설위원이 편집위원 시절 매주 한차례 신문 한 면에 써내려간 ‘이준희의 세상 속으로’도 이런 평범한 사람들의 초상을 담은 참신한 연재물이었다. 그는 "직접 세상의 참모습을 보고 만지고, 그리고 겪고자 했다. 평범하되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진짜 우리 이웃을 만나 보고 싶었다"며 1년여 동안 골목길과 시골 장터와 병원, 그리고 산과 들녘을 찾아 다니며 글을 썼고 그 가운데 30편을 모아 ‘세상 속으로’를 냈다.
이런 종류의 인터뷰는 대개 유별난 사건과 관련된 인물이나, 특히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의 가난한 초상을 그리는 쪽에 치우치기 마련이다. 하지만 ‘세상 속으로’는 그런 사람들말고도, 드러내놓고 자랑할 건 아니어도 알고보면 흐뭇하고, 때로는 대단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골고루 담고 있다. 경북 봉화군 소천면의 간이역인 임기역장 이야기, 서울 강남의 농사꾼 박성안씨, 강원 횡성 금불산의 사설천문대장 유종록씨 부부, 신용금고 사장을 그만두고 영업용 택시 운전사로 나선 김기선씨…
사건사고의 뒷얘기를 들려주는 인물들, 고향을 생각케 하는 사람들 등 여러 주인공을 4가지 주제로 적당히 나누고 묶었는데, 유별나게 가슴 찡하게 만드는 이야기들은 어렵지만 희망을 잃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가장 낮은 자리에서 세상을 올려다 보자’이다. IMF 체제 이후 갑작스레 모든 것을 잃고 하루종일 스산한 바람이 불던 3월의 영동 장에서 햇빛 한자락 깔고 앉아 시와 소설을 읽는 장돌뱅이 여인, 시각장애에도 불구하고 김덕수 사물놀이패에 끼고 국내 유일의 재즈 하모니카 연주자가 된 전제덕씨.
특히 의사도 포기한 생명을 결코 놓지 않은 신생아 다운이 이야기를 읽을 때면 한순간 눈물이 핑 돈다. "생각해 보라. 그 작고 연약한 아기조차 포기하지 않았던 강렬한 삶의 희망을." ‘세상 속으로’는 지금 힘겹게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어깨 툭툭 치며 힘내라고, 힘내라고 북돋워주는 따뜻한 마음을 담은 책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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