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는 헌법재판소의 행정수도건설특별법 위헌 결정을 계기로 그 의미와 지방분권 추진의 과제 및 방향 등에 대해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좌담회는 22일 오전 한국일보 11층 편집국 회의실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편집자 주-사회=이창민 산업부장
-최흥석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이달곤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임지봉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 건국대 법대 교수
-헌법재판소의 행정수도건설특별법 위헌 결정을 어떻게 보십니까.
◆임지봉 위원= 헌법재판소가 위헌의 근거로 제시한 것이 ‘관습헌법’이었습니다. 물론 관습 헌법이 위헌심사의 기준이 될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실제로 재판에서 관습 헌법을 재판의 준거로 삼는 데는 무척 신중을 기합니다. 관습헌법은 불확정적이고 애매모호한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보충적이고 보완적으로 적용되던 관습헌법이 유일한 판단의 근거로 제시된 예는 국내는 물론, 국외에서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엄청난 파급효과를 내는 중차대한 사안을 결정하려면 위헌의 근거가 명백하고 치밀한 논리적 구성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그래야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 거죠. 그 존재 자체가 논란의 소지가 있는 관습헌법을 유일한 근거로 한 판결은 설득력이 빈약한 결정이라는 비판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최흥석 교수=국회에서 통과된 법률을 집행하는 데 왜 시비를 거느냐는 주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신행정수도를 이전하기 전에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결국 수도 이전에 대한 논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급히 추진하다가 이런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국가나 사회가 집단으로서 결정을 내릴 때 다수결의 영역에 속하는 문제가 있고, 전원합의 또는 사회적 합의(컨센서스)의 영역에 속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미국의 정치학자 로버트 달은 ‘사회의 여러 갈등은 정치적 갈등이 아니라 정책적 갈등’이라고 했습니다. 사회적 합의의 영역이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국민 상당수는 수도이전이 다수결의 논리가 아닌 사회적 합의의 영역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후속 논의 없이 추진할 수 있다는 안이한 생각이 이런 사태를 초래했습니다.
◆이달곤 교수=헌법은 본래 정치적 타협의 산물입니다. 헌재의 판결은 정치, 경제, 국토관리에 관한 결정인 만큼 정치적인 고려나 집권세력에 대한 배려등을 배제하고 사회적 여론을 수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헌재는 수도에 대해 항상성, 상징성, 통합성 등의 4가지 기준을 제시했는데 이 기준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한 국가가 정통성을 가지고 헌법정신을 충실히 지키면서 다른 가치나 권력구조의 기준에도 활용될 수 있는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행정부는 그 동안 수도이전을 수단적인 가치에서 접근했습니다. 단순히 수도를 건설한다는 물리적인 관점으로만 본거죠. 수도의 상징성이나 통합성은 거의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수도이전이 국민투표가 필요할 정도의 중대 사안이라는 점은 인정해야 합니다. 정부도 너무 조급하게 추진했습니다.
◆임=헌재는 수도 이전은 헌법개정이 없으면 안 된다는 논리를 전개했습니다. 다시 말해 앞으로 공청회 등 여론 수렴절차를 거쳐 국민적 합의를 통해 법을 만들더라도 수도 이전은 힘들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점에서 헌재의 다수 의견은 너무 앞서 나갔습니다.
관습헌법을 위헌의 유일한 근거로 활용한 이번 판결로 앞으로 헌재에 헌법소원이 폭주할 것입니다. 국민이 성문 헌법으로는 권리 침해를 받지 않았지만 관습헌법으로는 침해를 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입법부나 행정부의 국정 수행에도 차질이 예상됩니다. 앞으로 실체도 불분명한 관습헌법 때문에 공무원들은 ‘성문헌법에 근거해 추진하는 정책이나 사업이 혹시 관습헌법에 저촉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바로 이 점에서 이번 헌재 판결은 또 다른 부작용을 양산할 것입니다.
-위헌 결정 이후 충청권의 반발과 경제 불황 장기화 우려 등의 부작용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요.
◆최= 국토균형발전 측면에서 수도이전은 균형발전의 정책적 수단이었습니다. 수도 이전이 균형발전에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신중히 고려했어야 합니다. 수도 이전 문제와 별도로 균형발전 문제는 다시 중지를 모아야 합니다. 헌재의 결정으로 수도 이전이 무산된 것이지 지방의 균형발전이라는 명제까지 중단된 것은 아니니까요. 지금까지의 논의가 수도 이전으로 누리는 이익과 효과 쪽으로 너무 치우치지 않았는지 반성할 일입니다. 해야 할 일이 생각 보다 많습니다.
◆이= 단기적으로 참여정부는 무거운 짐을 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대표 정책으로 꼽혔던 수도이전이 법적 제약을 받게 돼 청와대와 여권은 정국 운영에 큰 어려움을 맞게 됐습니다. 참여정부는 국가 경쟁력 향상 보다는 분배쪽에 무게 중심을 둬 왔습니다. 차제에 분배 위주의 정책 방향을 전환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충청권 주민들이 받을 충격을 완화해야 합니다. 공공기관 이전을 추진하고 과학기술, 지식산업을 행정과 결합해 발전시키는 모델을 만들어야 합니다. 충북 대전권을 첨단미래 공간으로 키우는 보강 정책이 빨리 나와야 합니다.
이와함께 중앙 정부를 과감히 축소해 작은 정부로 가야 합니다. 참여정부가 말로는 분권화를 외치면서 각종 위원회 신설 등으로 중앙 집권화 한다는 일부의 지적을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방의 재정 자립도를 끌어 올리기 위해 국세와 지방세의 비율도 합리적으로 조정해야 합니다. 교육도 상당부분 분권을 해야 합니다. 지방에서 특성 있는 교육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 줘야죠.
◆임= 헌재의 논리상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헌재 결정은 받아 들여야 합니다. 정부는 헌재 판결을 정밀 분석하고 그 틀 안에서 위헌성이 제거된 정책들을 입안해 집행해야 할 것입니다. 신행정수도 특별법에는 수도권 과밀화방지, 국토 균형발전, 지방 분권화 등 긍정적인 취지도 많이 있습니다. 이런 입법취지를 살려가면서 법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충분한 시간적 여유와 광범위한 국민적 합의가 필요한 것은 물론입니다.
◆최=선진국 도약을 위한 국가 공간구조를 만든다는 시각에서 지금까지의 지방 분권·분산 정책을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도권은 우리나라 발전의 심장부입니다. 수도권을 얼마나 체계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지도 재 논의해야 합니다. 수도권에서 나오는 혁신 시너지를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수도권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국제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지방에도 발전 잠재력을 향상 시킬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해야 합니다. 지방 분산·분권 정책도 위에서 권력을 떼어서 나눠주는 식이 아니라 국민들에게 얼마나 도움될까를 차분히 따져봐야 합니다.
◆이= 헌재의 결정에 따라 행정수도 이전 계획은 포기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수도 이전을 포기한다고 해서 참여정부가 완패한 것은 아닙니다. 이 정부는 다른 정부가 감히 하지 못했던 정책을 과감히 입안해 추진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굴해 낸 진보적인 정권입니다. 수도 이전을 포기한다고 지방 분권화 작업이 완전히 물 건너 가는 것도 아니고 정부의 노력이 허사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적당한 때가 오면 국민적 합의에 따라 다시 추진하면 됩니다.
지방 분산·분권 정책은 여러 정책과 과제를 한데 묶어 조합으로 처리해야 합니다. 도시 하나 건설하는 식으로 이루어져서는 안됩니다. 시장의 역동성을 활용하면서 분산·분권 정책을 펴 나가는 것이 바람직 합니다. 마구잡이식 공공 프로젝트 수행은 부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이죠.
◆임=지방 분권화는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화급한 과제입니다. 칵테일식 정책의 나열로는 지방 분권을 이룰 수 없습니다. 정부가 수도권 과밀화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수도이전을 추진한 것도 이 때문이었습니다.
헌재 결정은 수도 이전의 절차적 하자를 문제 삼은 것이지 그 내용의 부당성을 지적하진 않았습니다. 행정부와 입법부가 헌재 결정문을 면밀히 분석해 지방 분권화의 취지를 살려야 합니다. 현 정치구도 상 헌법개정을 통한 수도이전은 어렵습니다. 지방 분권이라는 시대적 과제에 맞춰 국가기관을 부분적으로 이전할 수 있는 법을 여론 수렴과정을 통해 만드는 데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정리=송영웅기자 hero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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