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 이튿날인 22일 정치권은 여야 가릴 것 없이 성난 충청민심 달래기에 나섰다. 지역 여론이 워낙 격앙돼 있는데다 내년 4월로 예정된 재보선까지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열린우리당은 "행정수도 이전을 추진했던 기본 취지에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지만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한 채 전전긍긍하고 있다. 원내대표단 관계자는 "당분간은 여론의 추이를 봐가며 전반적인 대응책을 세울 것"이라며 "당장은 뭘 제시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충청권 의원들은 일제히 지역으로 내려가거나 별도 모임을 갖는 등 온종일 분주하게 움직였다. 대전지역 의원 6명 전원과 충북지역 의원 7명은 이날 오전 국정감사장 대신 대전과 청주로 내려가 당원과 시민·사회단체, 지자체 관계자, 지역주민을 만나 "헌재의 결정과 무관하게 실질적인 행정수도 이전은 계속 추진될 것"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대전 출신 의원들은 국회 차원에서 서울~행정수도 예정지 사이의 걷기대회를 개최하는 등 국민적 공감대 형성에 적극 나서겠다고 약속했고, 충북지역 의원들은 행정신도시를 건설하는 방안, 청와대와 국회를 제외한 중앙정부기관을 이전하는 방안 등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의원들은 또 성난 민심의 화살을 헌재로 돌리는 데에도 주력했다. 특히 충북지역 의원들은 위헌 결정을 내린 헌법재판관 탄핵에 나서기로 했다. 노영민 의원은 "헌재의 결정 자체가 위헌이라는 게 지역민의 생각"이라며 "서명운동과 궐기대회 등을 열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한나라당은 당론 확정이 무산됐던 ‘충청권 행정특별시 건설’ 카드를 꺼내 드는 등 적극적인 행보에 나섰다. 과학기술부와 환경부, 노동부 등 7개 중앙부처와 농촌진흥청, 축산기술연구소 등 25개 기관을 이전해 사실상 충청권을 제2의 수도로 육성하겠다는 청사진이다. 이한구 정책위의장은 "수도이전을 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이미 다양한 충청권 개발전략을 수립해놓았다"며 다소 느긋한 표정을 지었다. 박근혜 대표도 "충청권의 행정특별시 건설은 우리가 만들었던 대안"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여야가 행정수도이전의 대안 마련에 의외로 쉽게 합의하는 게 아니냐는 성급한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당내에서는 여권이 개헌 또는 국민투표 강행카드를 들고 나올 경우 또다시 정치적 딜레마에 빠지는 게 아니냐는 걱정도 많다. 한나라당은 이날 의원총회에서 ‘우리는 이렇게 생각한다’는 제목의 결의문을 채택하고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자중하는 게 좋다는 의견에 따라 이를 취소했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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