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바다와 인접한 낙동강이나 섬진강 변에 살았던 사람들은 대부분 논이나 밭에서 잡은 참게로 게장을 담가먹었던 기억을 잊지 못한다. 특히 귀한 손님이 오면 어머니들은 꼭 참게장을 내놓았다. 때때로 아이들이 먹고싶다고 성화를 부리면 "할아버지 드려야 된다"고 달래던 일도 흔했다. 지금은 낯선 장면이 됐지만…. 어느덧 ‘추억의 음식’이 된 듯한 참게장 얘기다. ●이 가을 참게장이 입맛을 자극한다. 지난 봄, 알이 꽉 찼을 때 담가놨던 참게가 잘 익었다. 다리 안쪽에 꽉 찬 속살을 파 먹은 후 게 등껍질에 밥을 담아 간장을 부어 비벼 먹을 때의 그 포만감과 행복함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먹어도 먹어도 체하지 않고 술술 넘어가는 것이 ‘밥도둑이 따로 없다’는 말 그대로다. 참게라면 금상첨화지만 꽃게로 담근 게장이라도 이 계절에 꼭 한번 맛보자.◆게장-맛 탐험
게장은 흔히 짠 맛에 먹는다고 한다. 밥을 많이 먹게 되는 것이 짠 맛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다. 하지만 게장은 다섯가지 맛으로 먹는다. 짜고, 쓰고, 달고, 맵고, 신, 다섯가지 맛이 모두 들어 있기 때문이다. 간장의 짠 맛, 게 자체의 쌉싸름한 맛, 간장 양념에 들어간 양파가 내는 단 맛, 발효과정에서 생긴 시큼한 맛, 그리고 청양고추나 홍초를 가미해 적당히 매운 맛까지, 게장 한 숟갈이 혀의 다섯가지 감각을 모두 깨우는 셈이다. 게장 생각만 하면 입에 침이 돌고 밥이 술술 들어 갈 것만 같은 것도 이런 오묘한 맛에서 비롯된다.
■참게장
◆간장 맛이 속살까지 스며든 깊은 맛
보통 게장 하면 꽃게장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최근 참게로 담근 참게장을 전문으로 내놓는 곳들이 늘어나 미식가들의 입맛을 유혹한다. 꽃게는 3~7일 정도 간장에 담가두면 되지만 참게는 90일 이상 숙성시켜야 제맛이 난다. 껍질이 두껍고 단단해 간이 배이는데 시간이 오래 걸려서다. 또 꽃게와 달리 한 번 담가 놓으면 1년 가까이 두고 먹을 수 있는 것도 장점. 키토산과 아미노산 등 몸에 좋은 성분이 다른 게에 비해 훨씬 풍부한 것도 참게만의 매력이다.
◆유빙(02)403-6400 서울 가락동 경찰병원 인근
지난 봄에 잔뜩 담가놨던 참게장이 푹 익었다. 조선간장과 왜간장을 적당한 비율로 섞은 다음 생강 대파 쪽파 마늘 등을 넣고 담근 간장 양념 맛이 맑으면서도 쌉싸름하다. 게장을 담글 때부터 불순물을 제거하고 거르는 과정을 시작해 3개월간 수차례 반복하기 때문. 간장은 짜지도 밍밍하지도 않게 염도가 적당하다.
참게가 겨울잠을 자기 위해 축적해 놓은 노란 빛깔을 띠는 일명 ‘곱’과 까맣게 변한 내장이 꽉 차 있다. 곱이 없으면 참게 본연의 은은한 향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뚜껑 안쪽의 곱과 내장을 박박 긁어 따뜻한 밥에 얹어 간장을 부어 비벼먹는 것을 상상만 해도
군침이 돈다.
1인분에 한 마리. 참게장 정식을 시키면 참게 한마리와 공기밥, 국물이 시원한 대게탕과 반찬들이 같이 나온다. 1만2,000원. 킹크랩과 대게, 털게, 바닷가재 전문점인 이 곳에서 비교적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메뉴이다. 메뉴판은 따로 없다.
◆뜸팡이와 묵은김치(02)3455-1880 서소문로, (02)577-7213 개포동 1단지
서울 서초동 법원 인근에서 참게장 잘하기로 소문난 ‘자연마을’이 최근 서울 도심과 개포동 주택가로 자리를 옮겼다. 3년 묵은 김치를 주재료로 한 메뉴를 같이 내놓는 것이 달라졌다.
참게장은 참게를 해금(불순물 제거)해 간장 양념에 넣고 섭씨 4도에서 숙성시켜 만든다. 발효과정 중에 양념만 따로 꺼내 9번 이상 끓이며 불순물을 걷어내는 것이 요령. 껍질을 깨 물면 흘러나오는 양념이 구수하다. 참게장 정식 1인분에 1만5,000원.
같이 나오는 이 집 김치도 각별하다. 경기 남양주시의 지하 저장고에서 3년간 숙성시켜 내놓는데 깊은 맛이 코를 찌른다. 신 맛에서 세월의 깊은 맛이 느껴진다. 묵은 김치로 끓인 김치찌개 4,000원. 묵은 꽁치김치찌개 6,000원, 삼겹살을 상추 대신 김치에 싸서 먹는 묵은김치삼겹살은 7,000원.
■꽃게장
◆부드러운 속살의 맛
꽃게가 가진 푸짐한 속살, 적당히 배인 간장 양념 맛은 꽃게장만이 가진 매력이다. 커다란 등껍질에 공기밥 하나를 통째로 담아 비벼 먹는 것은 게장 맛의 압권. 참게장에 비해 크기가 크고 껍질이 부드러운 것이 특징이다.
◆꽃게마을(02)921-8880 고려대 정문옆 하이마트 옆 골목 www.crabnara.com
신선하고 상큼한 꽃게장 맛을 내기로 유명하다. 식탁에 오른 게장을 보면 속살이 새하얗다. 간장 양념에 3일간만 푹 담가 내기 때문. 더 오래 놔두면 속살에도 간장 양념이 배어들어 까매진다고. 속살이 까맣게 되기 전에 내는 것은 게의 신선함을 느낄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속 살에 살짝 배인 짠 맛도 결코 자극적이지 않고 은은하다. 내장이나 알이 팍팍하지 않고 수저로 당겨도 잘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재료가 신선한 것만을 쓴다.
간장 양념에는 마늘과 생강 청양고추 대파 양파 등이 들어 가는데 단 맛은 양파로만 낸다고. 특히 양념에 천궁과 후박 창출 등 한약재를 함께 넣어 담근 한방게장은 이 집만의 전매특허다. 유명 한의사의 추천으로 게와 궁합이 맞는 재료들만 골라 소화가 특히 잘 된다고 한다.
게장은 1만5,000원. 한방게장은 1만8,000원. 게장백반은 식사와 된장 포함해 1만8,000원. 주인 김미선씨가 식약청의 명예급식홍보대사, 교육청의 환경정화심의위원을 맡고 있을 정도로 청결과 재료의 신선함에 정성을 쏟는다. 온라인 택배로도 판매중.
◆먹깨비촌(031)707-0153 분당 효자촌 먹거리
개성 출신인 주인 이채웅씨의 어머니로부터 게장 담그는 비법을 물려 받은 며느리가 직접 만든 간장게장을 내놓는다. 황토와 참숯을 넣고 2일간 걸러낸 지장수를 사용, 비린내가 나지 않는다고. 냉장 상태에서 6일 정도 숙성시켜 짭짜름한 맛이 강한 편인데 간장 양념에는 술과 과일즙 생강 통마늘 등이 들어간다.
게 등껍질을 접시 양쪽에 깔고 중간에 다리 조각들을 배열해 차려내는 것이 특히 맛깔스럽다. 위에는 잘게 썬 파란 색의 쪽파와 참깨가 뿌려져 있어 붉은 홍고추와 색상이 잘 대비된다.
등껍질에 밥을 비빈 다음, 쪽파와 깨를 얹고 날김에 싸서 먹으면 감칠맛이 난다. 마리 당 1만8,000원, 작은 게를 내놓는 간장게장백반은 1만원.
/글 사진 박원식기자 parky@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