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국민투표를 거치지 않은 수도이전 결정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위헌이라고 선언했다. 이로써 유례가 드문 국민적 논란과 분열을 초래한 수도이전 문제는 모든 게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신행정수도 건설특별법이 효력을 상실함에 따라 이 법에 근거한 모든 수도이전 계획과 준비도 즉각 중단할 수밖에 없게 됐다.위헌 결정에 따라 수도이전을 강력하게 추진하던 정부부터 큰 타격을 받겠지만, 찬반 여부와 관계없이 사회 전체에 충격의 영향이 미칠 것이 당연하다. 따라서 헌재 결정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 못지않게 당장 정치사회적 충격을 수습해 혼란을 줄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또 그것이 위헌 결정의 뜻을 살리는 지혜로운 선택일 것이다. 수도이전 문제를 원점에서 다시 논의하자는 얘기는 그런 다음에 꺼내는 게 순서라고 본다.
헌재의 위헌 결정이 갖는 가장 큰 의미는 수도이전은 국민의 근본적 결단이 필요한 헌법적 문제라고 선언한 데 있다. 헌재는 이런 중대한 문제를 국민의 뜻을 직접 묻는 국민투표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국회와 대통령의 결정만으로 추진하는 것은 국민의 기본권인 참정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신행정수도 특별법이 대의기관인 국회에서 합법적 절차로 입법됐기 때문에 국민 동의를 받은 것과 같다는 논리를 여지없이 반박한 것이다.
헌재는 수도는 국가 정체성과 국민의 정서적 통일에 큰 영향을 미치는 핵심 헌법사항이라고 규정했다. 비록 헌법에 명시하지 않았더라도 관습 헌법적 규범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 국민은 사전적 의미부터 수도를 뜻하는 서울이 역사적인 수도라는 법적 확신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 관습법적 확신이 바뀐 경우에도 수도이전을 위해서는 헌법에 새로운 수도를 규정하는 헌법개정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따라서 어떤 경우에도 헌법개정을 위한 국민투표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헌재의 이런 판단에 이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온 나라가 찬반이 갈려 극한적 대결로 치닫는 상황에서 헌재 결정은 더없이 값진 갈등 해소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한다. 정치권은 물론이고 사회 전체가 지역과 이념 계층 등에 따라 이해가 엇갈린 채 저마다 강퍅한 주장만을 펴는 상황이 지속되는 것은 국가적으로 불행한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헌재가 모든 논의를 원점으로 되돌린 것은 나라 전체를 위해 오히려 다행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누가 이기고 졌는가를 따지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접점없는 논쟁에 따라 끝없이 이어질 국민적 분열과 사회적 낭비를 막는 것이라고 믿는다.
이렇게 볼 때, 무엇보다 수도이전을 둘러싼 소모적 논쟁을 되풀이하는 것은 피해야 할 것이다. 우선 정부부터 무리하게 수도이전을 추진한 것을 반성하고, 이미 저질러놓은 일을 수습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수도이전에 반대한 쪽도 헌재 결정에 환호하고 정부를 비난하는 데 매달릴 게 아니라, 사회경제적 충격과 혼란을 줄이는 데 신경 써야 할 것이다. 정치적 이해타산을 앞세워 사회적 갈등을 부추기는 것은 모두가 삼가야 한다.
헌재 결정으로 수도이전 문제가 완전히 매듭지어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부가 어떤 선택을 하든 간에 국가적 중대사를 추진하는 데는 고상한 명분과 가치보다 국민적 합의가 긴요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 교훈을 겸허하게 되새기지 않는다면 국민투표를 통해 수도이전을 다시 추진하는 것은 한층 어려울 것이다. 우리 사회도 국민투표와 헌재 결정에서 사회적 논란의 해결책을 찾으려는 발상을 반성할 필요가 있다. 그런 승부를 거론하기에 앞서 진지하고 성실한 자세로 국가적 과제를 논의하고 타협을 모색하는 자세가 절실히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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