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반세기 냉전의 설계부터 해빙까지 미국 최고의 전략가 및 협상가로 활약한 폴 H 니츠(97·사진)가 19일 숨졌다.니츠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부터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까지 50여년 간 지미 카터 대통령을 제외한 모두 8명의 대통령을 지근 거리에서 보좌하며 대 소련 전략을 책임졌다.
특히 그가 1950년 작성해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서명한 ‘NSC(National Security council)68’문서는 미국의 냉전 승리를 가져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NSC 68에서 소련의 세계 헤게모니 장악을 막기 위해 군사력 증강과 공세적 외교정책이 필요하지만 군사적 모험주의보다는 소련 내부의 변화를 유도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봉쇄·억제 정책의 이론적 근거를 세웠다.
그는 존 F 케네디, 린든 B 존슨 행정부에서 국방부 고위 관료로 공산주의 팽창저지의 최일선에 섰고, 카터 행정부에서는 대소 군축협상이 소련의 핵무장을 오히려 도와줄 수 있다며 반대했다.
그러나 1980년대 소련에서 미하일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등장해 개혁 개방에 나서자 레이건 행정부의 핵사일 감축 협상 수석대표로 핵 군축을 적극 추진했다. 이는 소련의 개혁을 정치·외교적으로 지원해 결과적으로 소련 스스로의 해체를 유도한 탁월한 전략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한국전쟁 당시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과 국방부의 핵 무기 사용 추진에 맞서기도 했다. 그의 회고록 ‘히로시마에서 글라스노스트까지’와 미 국무성 ‘1950년 미국의 대외관계’자료에는 니츠가 한국전 때 중국 확전, 소련 참전, 핵 무기 재고 부족 등을 고려해 핵 무기 사용 반대를 주도한 것으로 돼 있다.
안준현기자 dejav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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