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21일 신행정수도 특별법을 위헌이라고 결정함에 따라 참여정부가 정권의 사활을 걸고 추진해온 충청권으로의 행정수도 이전이 사실상 백지화했다. 정부는 이전 규모를 축소하고, 위헌요소를 배제한 뒤 재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지만 이전 비용 급증과 수도권의 반발 등 부작용이 커 정상적인 이전이 진행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위헌 결정으로 정부정책이 신뢰를 잃게 된데다 향후 이어질 정치적 공방으로 불확실성이 가중돼 가뜩이나 경착륙 우려가 큰 부동산 경기의 침체가 장기화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수도 이전 사실상 백지화=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현정부 하에서 신행정수도 이전은 불가능해졌다. 헌법 개정에 국회 재적의원의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지만 여당 의석이 이에 못 미치기 때문이다.
설령 우여곡절 끝에 국회 의결을 거쳐 헌법 개정안을 국민투표에 붙인다고 해도 통과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반대 의견이 약간 우세한 데다 헌재의 이번 결정으로 분위기가 반대쪽으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국토개발계획 전면 수정 불가피=신행정수도 위헌 결정으로 참여정부가 집권 초기부터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중장기 국토개발계획의 전면적인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참여정부의 주요 국가전략 목표였던 국가균형발전의 모태가 됐던 ‘신국토구상’ 정책도 정상적인 추진이 힘들어졌다. 노무현 대통령은 집권 전부터 지방자치와 분권화를 통한 지방의 균형적인 발전을 국가정책의 제1 목표로 삼고 신국토개발계획을 추진해 왔다. 이번 결정으로 혁신 클러스터 건설, 기업도시 건설 등 정부가 추진해 온 정책들도 연쇄적으로 차 질을 빚을 전망이다.
◆모든 행정행위 무효화=헌재의 결정으로 지금까지의 모든 행정 행위는 무효가 된다. 행정수도건설추진위원회 역시 존립 근거를 잃게 됐다. 당장 추진위가 해체되는 것은 아니라 해도 결국 간판을 내리게 된다. 추진위가 시행해 온 후보지 선정과 심사 최종 예정지 결정 등의 행위도 모두 백지화한다. 부동산 투기를 막기 위해 시행된 충남 연기·공주의 행정수도 예정지 토지 특례지역 지정 역시 21일자로 자동 해제됐다.
◆공공기관 지방 이전 차질=연말로 예정된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 또한 큰 차질이 예상된다. 정부는 현재 수도권 소재 268개 공공기관 가운데 180~200개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이전하고 이전한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11개 시·도에 혁신도시를 건설한다는 계획을 추진 중이었다. 공공기관의 지방이전은 행정수도 이전과 함께 국가 균형발전의 두 축을 이루는 중요 사안이다. 그러나 행정수도 이전이 무산된 상황에서 공기업들이 지방이전에 순순히 응할 것인지는 불투명하다. 행정수도 이전을 전제로 한 서울 등 수도권 발전 전략도 그 의미를 잃게 됐다.
◆재추진해도 비용 늘어 힘들어=정부는 당초 예상한 규모의 행정수도 이전은 힘들더라도 행정 기능만 가진 협의의 행정수도 이전은 추진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마저 쉽지 않다고 지적한다.
정부는 당초 올해 말까지 신행정수도 이전 예정지에 대한 지정고시를 확정해 내년 초부터 2004년 1월 1일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토지·건물 보상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그러나 헌재의 위헌 결정으로 지정고시를 할 수 없게 됐을 뿐 아니라 보상 기준도 최소한 1년 이상 지연이 불가피해 졌다. 당초 토지·건물 보상비는 4조6,000억원으로 책정됐지만 보상 기준일이 늦어질 경우 공시지가도 급등할 수밖에 없어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신행정수도 착공 예정 시기도 당초 2007년에서 미뤄질 수밖에 없다. 지정 고시를 비롯한 모든 절차가 최소 1~2년 늦춰지게 돼 착공도 그만큼 지연되기 때문이다. 2007년은 또 차기 대통령선거가 있는 해여서 이번 결정으로 참여정부 임기 내에 신행정수도 착공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결론이다.
송영웅기자 hero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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