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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이라크, 美대선 후 달라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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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이라크, 美대선 후 달라질까

입력
2004.10.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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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당 전당대회(9월2일) 직후 부시 대통령에게 두 자리 수 차로까지 밀렸던 민주당의 존 케리 후보는 1차 TV토론(9월30일) 압승 이후 무섭게 추격, 3차 토론 직전에는 거의 만회했거나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부시를 앞지르기도 했다.그러나 케리가 3차례의 TV토론에서 부시에게 3 대 0으로 승리했다는 언론보도가 나온 순간부터 상황은 전연 딴판으로 전개되고 있다. 상식적으로 보면 당연히 케리의 상승세에 가속도가 붙었어야 함에도 오히려 부시가 앞서는 여론조사 결과가 많아졌다. 선거를 10여일 앞둔 현 시점에서 형세는 눈 터지는 계가 바둑 양상이나 미세하나마 부시의 우세가 뚜렷하다.

외부에서 미국 사회를 관찰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언뜻 이해하기 힘든 현상이다. 더욱이 2차 TV토론 직전에는 사담 후세인 체제 하에서 대량살상무기(WMD)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듀얼퍼 보고서가 발표돼 이라크전의 명분을 결정적으로 허물어 버리기도 했었다. 잘못된 전제 하에 엄청난 인명 희생과 재정적 부담을 안기고 있는 전쟁을 강행한 부시의 지지도는 급전직하할 법도 한데 현실은 정반대다.

반미주의자인 마하티르 전 말레이시아 총리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미국인들이 대단히 무식하기(very ignorant) 때문"이라고 그 같은 현상을 나름대로 풀이하면서 결국 부시가 재선될 것으로 내다봤다. 물론 미국인들이 매우 무식하다는 마하티르의 견해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그보다는 9·11 테러 충격에 의한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로 설명하는 것이 더 나을 성 싶다. 9·11 이후 미국민들은 테러방지라는 명분에는 모든 것을 양해하고 자신들의 불편과 권리제한을 감수한다. 이라크전으로 후세인이 제거됨으로써 세계가 더 안전해졌다는 부시 대통령의 강변에 별로 놀라워 하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이라크전으로 세계가 한층 더 불안해졌다는 국제사회의 인식과는 동떨어지지만.

이라크 자체 상황도 암담하다. 미국은 저항세력 거점에 가차 없는 공격을 가하는 한편 자진 신고하는 무기에 거액의 보상을 해주는 양면작전을 통해 저항세력의 고사를 꾀하면서 내년 1월 실시될 총선의 정지작업을 하고 있다. 그러나 자살 폭탄테러 등 저항세력의 공격은 줄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이라크 내에서 가장 안전하다는 바그다드의 그린 존까지 자살폭탄 공격을 받는 지경이 됐다. 현재 이라크에서 다국적군의 영향력이 미치는 지역은 몇몇 대도시와 이들을 연결하는 간선도로 정도에 불과한 실정이어서 총선이 정상적으로 치러질지 의문이다.

부시 행정부는 저항의 실체를 후세인의 잔당과 외부에서 침투한 테러세력의 소행으로 보고 싶어 하지만 이미 민족적·종교적 저항 단계로 번졌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이런 지경이면 부시가 재선된다 한들 뾰족한 대책이 있을 리 없다. 들불처럼 일어나는 순교자적 저항을 힘으로 제압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국제사회의 지원을 끌어들이겠다는 케리가 당선된다 해도 별반 달라질 것이 없다는 분석들이다. 후세인 치하의 WMD진실보다는 2대에 걸친 부시 가문의 증오, 정보왜곡, 네오콘들의 상상력 부족 등이 어우러진 이라크전 강행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미국에 두고두고 재앙이 될 공산이 크다.

문제는 이라크의 암담한 상황이 부시만의, 미국만의 불행으로 그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당장 파병 기간 연장이 걸린 자이툰 부대의 안위가 걸려 있고 북한 핵 문제 해결에도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이라크에서 증폭된 이슬람세계의 분노와 증오가 테러에너지로 변해 전세계로 퍼져나갈 것을 생각하니 끔찍하기만 하다.

이계성 국제부장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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