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10월21일 프랑스 영화작가 프랑수아 트뤼포가 파리 근교 뇌이유에서 작고했다. 향년 52. 오늘의 주인공을 ‘영화감독'이라고 하지 않고 굳이 ‘영화작가'라고 한 것은 트뤼포라는 이름이 이른바 ‘작가주의'와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한 편의 영화를 만드는 데 중심 중의 중심인물은 감독이고 감독은 작가가 소설에 개성을 부여하듯 영화에 자신만의 개성을 부여하는 창조자라는 생각을 흔히 작가주의라고 하는데, 영화전문지 ‘카예뒤시네마'의 명민한 평론가로서 이 작가주의를 주창하고 이른바 ‘누벨바그'(새물결) 감독으로서 작가주의를 실천한 사람이 트뤼포다. 시나리오작가나 배우, 스태프들에게는 불편한 주장이겠지만, 트뤼포에게 감독이 영화를 만드는 과정은 작가가 소설을 쓰는 과정과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었다.트뤼포의 영화 상당수에는 자전적 요소가 개입돼 있었다. 장편 극영화로서는 첫 작품인 ‘400번의 구타'(1959)도 그렇다. 불우한 가정에서 자란 13세의 파리 소년 앙투안의 겉도는 학교생활과 소년원 행, 가출 따위를 흑백 화면에 담은 이 영화의 핵심 스토리는 트뤼포 자신의 소년기 체험에서 따온 것이다. 누벨바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이 영화로 트뤼포는 그 해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았다. ‘400번의 구타'에서 주인공 앙투안 역을 맡은 소년 배우 장피에르 레오는 성년에 이르기까지 트뤼포의 작품 다섯 편에서 잇따라 주인공 역을 맡았다. 나머지 네 편은 ‘떠나간 사랑', ‘부부의 거처' ‘도둑맞은 키스' ‘스무 살의 사랑'이다.
영화작가로서 트뤼포의 이름을 결정적으로 만든 작품으로는 ‘쥘과 짐'(1962)이 꼽힌다. 앙리피에르 로셰의 장편소설이 원작인 이 영화는 친구 사이인 독일인 쥘과 프랑스인 짐이 제1차 세계대전을 앞뒤로 카트린이라는 여자와 맺는 삼각관계를 축으로 삼아 연애와 자유라는 주제를 천착한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