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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가도 아픔은 씻겨가지 않는구나…"/성수대교 붕괴 참사 오늘 10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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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가도 아픔은 씻겨가지 않는구나…"/성수대교 붕괴 참사 오늘 10주기

입력
2004.10.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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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참 속 없이 맑네요."32명의 목숨을 앗아간 성수대교 붕괴 참사 10주년을 하루 앞둔 20일 오후 2시. 사고로 제자 장세미(당시 무학여고 3년)양을 잃은 당시 담임교사 유갑례(62·여·서울 당곡고 교사)씨는 이날 묵묵히 다리 위를 걷다가 사고 지점에서 하늘을 한번 쳐다보고는 무겁게 말문을 열었다.

"그때 이후 처음 이 자리에 왔어요. 이곳에 오면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간 세미의 고통이 느껴져 일부러 피해왔습니다. 세월이 흘렀지만 아픔은 커지기만 하네요."

1994년 10월21일 오전 7시40분. 출근 승용차와 버스 등이 뒤엉켜 붐비던 성수대교에서 갑자기 굉음과 함께 북단 5번째와 6번째 교각사이 상판 50여c가 무너져 내렸다. 다리를 지나던 한성운수 16번 버스 등 차량 6대가 20여c 아래 강물로 추락했고 버스에 타고 있던 무학여고생 8명 등 모두 32명이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오전 8시께 교무실에서 사고 소식을 듣고는 세미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취업반을 택해 등교가 늦었던 터라 혹시 저 버스에 타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지요." 그러던 차에 세미 어머니가 교무실로 전화를 해왔다. "학교에 도착하지 않았다"는 말을 채 끝마치지도 못했는데 세미 어머니는 울음부터 터뜨렸다. "사과를 깎아주지 말고 빨리 내보냈어야 했는데…"라며 흐느꼈다. 그리고 잠시 후 세미 이름은 TV에서 발표된 사망자 명단 속에 들어 있었다.

세미 어머니는 실직으로 인해 우울증을 겪고 있던 세미 아버지 대신 집에서 기른 콩나물을 내다팔아 자식 뒷바라지를 해 왔다. 이런 가정환경 탓에 세미는 취업반을 택했지만 유달리 수학을 좋아해 뒤늦게라도 꼭 대학에 가 교사가 되고 싶어했다. 사고 5년 후인 99년에는 사고 이듬해 치러진 졸업식에서 딸 대신 명예졸업장을 받았던 세미의 아버지가 다리 북단에 세워진 희생자 위령비 앞에서 음독 자살했다.

"도대체 누가 이 부녀를 저 세상으로 보내고, 누가 이 가정을 이렇게 만들었는지 한탄스럽기만 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이들의 명복을 비는 기도를 올리는 일밖에 없다는 것도 안타깝고요." 카톨릭신자인 유씨는 사고 이후 10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집 부근 성당의 새벽미사에서 세미 가족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그리고 세미의 어머니는 하나뿐인 아들과 함께 지내고 있다.

사고 당시 무학여고 2학년이었던 정진경(27·여)씨도 이날 같은 반 친구였던 고 이지현양의 10주기를 앞두고 은사인 유씨와 함께 이곳을 찾았다. 정씨는 강물에 국화꽃을 던진 뒤 "지현아, 지금은 편한 곳으로 가 있지"라고 말하고는 금세 촉촉해진 눈가를 닦아냈다.

"아직 지현이에게 말 못한게 있어요. 사고 전날 지현이가 다른 친구에게 체육복을 빌렸는데 미처 돌려주지 못해 그 친구가 지현이에게 화를 많이 냈지요. 그런데 바로 다음날 이런 사고가 나자 그 친구가 두고두고 미안해 했어요. 아마 지금쯤은 지현이도 하늘나라에서 모두 알고 있겠지만요."

지현이 어머니 권모(53)씨는 당시 영결식에서 딸이 좋아하던 장난감 강아지를 안고 흐느끼다 실신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이들 외에도 제자와 친구를 잃은 무학여고 교사와 동문들의 아픈 기억은 아직까지 현재 진행형이었다. 당시 교사와 재학생들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한결같이 "기억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한 졸업생은 "사고 이후 졸업할 때까지 죽은 친구들의 이야기를 꺼내는 일은 무언의 금기였다"며 "지금도 옛 친구들을 만나면 당시 사고 얘기는 하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전성철기자 for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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