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小가게서 정보산업 첫 발나는 정보 산업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벤처 기업을 만드는 게 급선무라고 생각했다. 그때 구상한 벤처 비즈니스 모델은 이랬다. 회사 하나 차리는데 필요한 자본금을 1억원 정도로 볼 때 한 구좌에 1,000만원씩 열 개만 모이면 하나의 회사가 탄생한다. 출세한 사람에게 1,000만원은 그리 큰 부담이 아니다. 투자자는 대신 한 달에 한번 정도 모여 회사와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나누는 등 일종의 동호인 클럽을 형성한다. 다른 한편에선 젊은 기술자들에게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놓게 하고 능력 있는 사람을 골라 회사를 맡긴다.
나는 이를 실천에 옮겼다. 3년도 안돼 5개의 회사가 탄생했다. 우선 마이크로컴퓨터를 생산하는 삼보컴퓨터를 세웠다. 벤처라는 말 자체가 생소한 1980년 7월이다. 이어 마이크로컴퓨터를 파는 엘렉스, 이 컴퓨터에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는 한국소프트웨어연구소(KSI), 기술개발을 위한 큐닉스, 컴퓨터 이용자 및 기술자 양성을 위한 코콘 등 4개 회사를 잇따라 만들었다. 이중에는 내가 처음부터 일으킨 회사도 있고 기존 회사를 인수한 것도 있다.
예를 들어 삼보는 청계천에 있는 조그만 가게를 인수해 시작했다. 처음부터 직접 사람을 뽑고, 장비와 부품을 구하려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백창기라는 사람의 가게를 인수, 사업에 나섰다. 백씨는 원래 음향장치 회사인 ‘기쁜 소리사’에서 일했다. 기술이 뛰어났던 그는 청계천에 직접 가게를 차린 뒤 주로 비디오 게임기를 조립해 팔았다. 하루는 그가 일본 샤프에서 나온 마이크로컴퓨터를 카피해 나를 찾아왔다. 마이크로컴퓨터 사업의 장래와 타당성을 상의하러 왔다고 했다.
나는 당시 컴퓨터 회사 차릴 궁리에 골몰해 있던 터였다. 그래서 윈윈 전략을 세웠다. 내가 그 가게를 인수하면 시간을 절약하면서 창업의 디딤돌로 삼을 수 있었다. 백씨도 빡빡한 가게 운영에서 벗어나 한 숨 돌릴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삼보컴퓨터가 세상에 나오게 됐다.
나는 책상 머리에 앉아 일일이 컴퓨터를 조립하고 팔러 다니는 대신 정보산업이라는 큰 틀에서 사업 영역을 개척하기로 했다. 실제 업무는 젊은 일꾼들을 찾아 뜻을 펼치게 했다.
생산 부문은 금성사 공장장 출신인 김종길씨에게 맡겼다. 판매는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전자계산실에서 함께 일했던 이윤기씨가 적임자라고 여겼다. 그래서 두 사람을 대표이사 사장으로 임명하고 업무를 갈라주었다.
개발 분야는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통신연구실에 근무하던 강진구씨를 영입하려고 마음 먹었다. 나는 강씨와 만나 "우리나라 기업은 사장과 부사장 등 경영진을 우대하는 게 관례다. 그들은 사회적으로도 높은 지위를 인정 받는다. 반면 연구실에 틀어박혀 기술 개발에 몰두하는 사람은 무시당하는 일이 허다하다. 나 자신 기술자 출신인 만큼 기술자가 신나게 일할 수 있고 대우 받는 회사를 함께 만들어 보자" 고 같이 일할 것을 제의했다. 강씨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에 두루 통달했다. 특히 개발은 물론 생산 기술에도 노하우를 지닌 당시 최고의 엔지니어였다. 그는 흔쾌히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한국 최초의 기술 중심 벤처 기업의 부사장이 됐다. 그러나 대우는 사장과 똑같았다. 경영 못지 않게 기술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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