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문화의 날이다. 지금 동아시아에서 사용되는 ‘문화'라는 말은 라틴어 cultura(영어의 culture)의 번역이다. 본디 경작이나 재배를 뜻했던 cultura는 그 파생의미로 교양이나 예술활동을 의미하게 되었고, 오늘날에는 흔히 ‘지식·종교·예술·도덕·법률·관습 등 인간이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획득한 능력 또는 습속의 총체'라는 넓은 뜻으로 사용된다. ‘문화의 날' 할 때의 문화는 그보다는 좁은 뜻으로 주로 예술과 학문 영역을 가리키는 듯하다.문화의 날은 1973년 대통령령으로 정해졌다. 국가가 문화의 주체로 또렷이 등장한 것은 20세기 초에 사회주의 정권들이 들어서면서다. 진보의 열정으로 무장한 이 새로운 정권 담당자들은 문화에서 선전·선동·교육의 힘, 새로운 인간형을 창출할 수 있는 거푸집의 역할을 발견했다. 물론 전근대 시대에도 명망 있는 군주가 문예진흥에 제한적으로 개입한 역사적 예들이 있기는 하지만, 문화가 적극적인 ‘국가 정책'의 대상이 된 것은 프롤레타리아혁명 이후인 셈이다. 1959년에 비공산권 사회에서는 처음으로 프랑스에 문화부가 생겼고, 이 관행은 이내 유럽대륙과 세계 여러 곳으로 퍼져나갔다. 1990년에는 한국에도 문화부(지금의 문화관광부)가 생겼다.
프랑스의 문학사학자 마르크 퓌마롤리는 ‘문화국가'(1992)라는 책에서 ‘문화부'라는 부처로 상징되는 국가의 문화 개입을 신랄히 비판한 바 있다. 퓌마롤리의 주장에 따르면, 1959년 프랑스에 문화부가 생긴 이래 프랑스의 예술과 문학은 무엇이 ‘문화적'이고 무엇이 ‘비문화적'인지를 결정할 권한을 부여받은 한 줌의 문화관료들에게 차압되었다. 그는 또 국가의 문화 개입이 프랑스 문화의 자율성을 해치고 저급화를 부추겨 왔다고 비판했다. 프랑스 사정은 잘 모르겠으나, 한국의 경우엔 그런 부정적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국가가 아니라 시장인 듯하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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