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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 내신이 권위를 찾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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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0.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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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부 대학의 고교등급제 실시 문제로 교육부, 대학, 교원단체들 간에 많은 논란이 있었다. 특히 대학이 폭로성 자료로 고등학교의 ‘성적 부풀리기’ 실태를 공개하면서 교육계와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결코 바람직한 처신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고등학교에 대한 일대 반성을 촉구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교 학교생활기록부는 평어 평가 이외에 대학 입시를 위한 상대적 평가요소를 기록해 주고 있는데도 대학에 따라서는 평어만을 사용하고 있다. 이로 인해 고교에서는 우리 학교 학생만 손해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성적 부풀리기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교사의 평가권은 학생 지도에 큰 역할을 해왔다. 수업을 잘하는 교사, 평가를 공정하게 하는 교사는 아무리 학생지도가 어렵다 해도 학생들로부터 존경과 신뢰를 받고 있다.

3년간의 학생기록은 학생 개개인의 다양한 정보를 대학에 제공할 뿐만 아니라 고교 교육 정상화에도 크게 기여해 왔다. 이 제도를 어떻게 꽃피우느냐는 바로 고교 선생님들의 몫이다. 그런데 근시안적인 안목으로 성적 부풀리기를 한다면 가장 권위 있게 행사해야 할 교사의 평가권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성적 부풀리기는 학생으로 하여금 공부를 태만히 하게 하고, 학교 교육의 부실을 초래하여 결국에는 교사와 학교에 대한 불신으로 나타남은 너무나도 뻔한 일이 아닌가?

교육부가 제시한 2008학년도 대입 시안을 보면 고교 내신성적에 조금 더 무게를 실어주고 있다. 근원적 해결책은 아니라 하더라도 고교 교육 정상화를 위한 방향이며 고교에 대한 배려라고 볼 수 있다. 이제 선생님들이 반성과 함께 재기를 다짐할 때가 온 것이며 더 이상 전문적 권위를 훼손하지 않도록 일신하여 신뢰를 얻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성적 부풀리기가 모든 학교, 모든 교사에 해당된다고 일괄하여 결론지어서도 안 된다. 소위 명문대학에서 내놓은 성적 부풀리기 자료는 대상 학생이 우수하기 때문에 당연히 ‘수’를 받은 학생이 많고, 특목고 출신의 성적으로 보이는 것도 많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학교에 따라서는 지나치게 낮은 점수를 주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경우도 많다.

학교에서 교과 평가를 할 때는 과목별 국가 수준의 성취기준을 근거로 학생들의 수준을 고려한 출제를 통해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학교 내 또는 지역 차원에서 교과별로 협력체제를 구성하여 출제능력을 갖추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여야 한다.

대학에서는 성적 위주의 선발보다는 미래의 성장가능성과 앞으로 공부할 전공의 특성에 부합하는 학생을 선발하기 위한 다각적이고 체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대학의 선발방식에 대해 사회적 지지와 신뢰를 받게 될 것이다.

교육은 공장에서 생산되는 제품과 달리 한번의 과정이 지나가면 리콜할 수가 없다. 따라서 교육의 과정이 중요시되고 학교의 책임과 공공성이 강조되는 것이다. 결코 정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거나 여론재판으로 결론을 내려서도 안 된다. 이제는 학부모를 비롯한 국민 모두가 신뢰와 애정을 가지고 학교 교육의 후원자가 되고, 교육부와 교육청은 학교 교육 활동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지원하고 바르게 행하도록 실효성 있는 지도를 해야 한다.

더 이상 품격과 위상을 떨어뜨리는 소모적 논쟁이나 변명을 그만두고 다 함께 지혜를 모으고 협력해야 할 때다.

이준해 전 서울시 교육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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