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올해 단풍이 예년에 비해 유달리 고울 것이라는 기사를 쓴 적이 있습니다. 예측은 빗나갔습니다. 설악산이나 오대산의 단풍은 기대 만큼 곱지 않았습니다. 꽃잎이 물들기도 전에 떨어져 바닥에 나뒹구는가 하면 나무에 붙어있는 잎사귀의 색도 선명하지 못한 것들이 많습니다.이유가 뭘까요. 단풍의 아름다움은 단풍이 들기 전 한달 가량의 날씨에 크게 좌우됩니다. 일교차가 크고 적당한 비가 와야 형형색색의 단풍이 듭니다.
9월 날씨만으로 판단하면 단풍이 고울 것이라는 기상청의 예측을 나무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추석이 지나면서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 단풍은 충분히 물들 시간을 갖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예년 수준은 되겠지만 현재로서는 유달리 곱다고 말하기 힘듭니다.
일부에선 "기상청과 언론이 단풍이 고울 것이라는 예고기사를 내보내면 꼭 단풍이 좋지 않다"며 비아냥대기까지 합니다. 앞으로의 날씨에 따라 남은 지역의 단풍이 어떨지 모르니 두고 봐야 하겠지만 본의 아니게 혼란을 드려 죄송하다는 말을 꼭 드리고 싶네요.
반면 억새는 다릅니다. 날씨의 영향도 덜 받고 단풍절정기를 쫓아 힘들게 돌아다녀야 하는 수고도 덜 수 있으니까요. 단풍이 일교차, 강수량 등 여러 가지 변수에 따라 색감을 달리하는 것에 비하면 억새는 무척 단순합니다. 햇빛의 각도에 따라 조금씩 변하는 색깔, 그리고 바람 정도가 억새 감상의 포인트입니다. 하지만 이 정도의 배경만으로도 억새가 주는 감동은 대단합니다.
그림으로 따지자면 단풍은 갖가지 물감으로 채색한 유화입니다. 그래서 팔레트에 짠 물감을 버무리는 과정에서 색감이 뛰어난 작품이 나올 수도 있지만 기대만 못한 작품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억새는 연필로 그린 스케치입니다. 화려한 맛은 없지만 두고두고 보아도 싫증나지 않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외부적인 요인으로 인해 억새를 제대로 감상하지 못할 가능성도 낮습니다. 억새가 단풍에 결코 뒤지지 않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한창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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