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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정선 민둥산…곱게 빗어내린 銀髮인듯 억새의 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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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정선 민둥산…곱게 빗어내린 銀髮인듯 억새의 물결

입력
2004.10.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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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는 가을여행의 또 다른 테마이다. 단풍의 화려함을 이기진 못해도 은근하고 그윽한 매력이 있다. 단풍이 컬러사진이라면 억새는 빛 바랜 흑백사진이다. 세련된 맛은 없지만 흐린 기억 속에서 추억을 반추할 수 있는 매개체로는 제격이다.흔히들 억새는 단풍이 질 때쯤 시작된다고 알고 있지만 그렇지 않다. 단풍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핀다. 반면 개화기간이 단풍보다 길다. 짧은 단풍 절정기에 맞춰 바쁘게 쫓아다닐 필요가 없다. 지금부터 내달 초까지가 만개시기이니 다소 여유가 있다.

단풍에 비해 억새명산은 그리 많지 않다. 경남 밀양의 사자평 일대, 전남 장흥의 천관산, 충남 홍성의 오서산 등이 대표적 명소로 꼽힌다.

반면 강원 정선의 민둥산은 이들 산에 비해 규모는 적어도 한 곳에 몰려 피기 때문에 해마다 이맘때면 억새로 장관을 이룬다. 가벼운 마음으로 올라 뜻밖의 수확을 거둘 수 있는 곳, 민둥산 억새산행의 매력이다. 대신 결코 만만하지는 않다는 단서가 붙는다.

민둥산을 가장 쉽게 오를 수 있는 곳은 발구덕이다. 해발 800m쯤에 위치한 마을이다. 정상의 높이가 1,119m이니 이 곳에서 300여m만 오르면 된다. 헌데 마을의 모습이 묘하다. 아래에서부터 정상까지 가파른 경사가 이어져야 하겠지만 마을에 이르러 깔때기처럼 푹 꺼져버렸다.

발구덕은 대표적인 카르스트지형이다. 석회암 지반의 갈라진 틈 사이로 이산화탄소를 머금은 빗물이 스며들어 석회암의 주성분인 탄산칼슘을 녹여버렸다. 오랫동안 이어진 현상으로 곳곳에 푹 패인 웅덩이가 생겼다. 발구덕이라는 말도 여덟 개의 구덩이라는 뜻의 ‘팔구뎅이’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지금도 어디선가 땅이 내려앉을 지 모른다는 한 주민의 말에 오금이 저려온다.

한쪽 문을 닫으면 다른 문을 열어두는 것이 자연인가 보다. 대체로 이런 지형에는 경작지가 많다. 지금도 고랭지농사가 한창이다. 밭에 심어둔 채소를 캐나가는 트럭의 왕래도 잦다. 만선의 어부가 항구로 돌아오면서 얼굴 가득 머금는 그런 미소를 그들의 눈에서 볼 수 있다.

발구덕에서 정상까지는 40분 가량. 처음부터 급경사의 연속이다. 한 발짝 떼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 2~3분 오르고 허리 한번 편 뒤 뒤를 돌아다보는 일이 잦아진다. 뒤돌아 본 산에는 이미 단풍이 절정이다. 마주보고 선 산이 단풍과 억새로 출렁일 장면을 기대하며 이를 악물고 오른다.

20분 정도 오르니 억새가 보이기 시작한다. 해는 이미 서산으로 지고 있다. 해질녘 가을햇살에 반짝이는 억새를 보기 위해 산행을 오후 늦게 시작한 탓이다. 그늘진 억새밭은 눈꽃으로 가득한 겨울산을 연상케한다. 산 능선에 다다르니 천지가 억새군락이다. 눈꽃인지, 목화솜인지 분간이 어렵다. 소금을 뿌려놓은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억새의 물결이 무려 14만평에 걸쳐 펼쳐진다. 억새가 크기도 웬만한 성인 키를 훌쩍 넘는다. 자칫 잘못 들어서면 길 잃기 십상이다. 출렁이는 억새물결에 따라 관광객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사라졌다를 반복한다.

억새 속에 묻혀 힘겹게 길을 오르다 보니 어느덧 정상이다. 사방이 억새로 뒤덮였다. 억새를 제외한 나무들은 보기 힘든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던 불모의 산, 변변한 이름조차 얻지 못한 채 벌거벗은 민둥산으로 불리던 이 곳이 억새천국으로 변한 것은 불과 10여년 전. 정상에 드문드문 생겨난 억새를 주민들이 수시로 태우다 보니 오히려 규모가 커졌다고 한다.

정상에서 내려다 본 억새밭은 마치 실력있는 이발사가 만들어낸 멋진 가르마를 연상시킨다. 뉘엿뉘엿 넘어가는 햇볕에 역광으로 비치는 억새들이 황금빛 또는 은빛물결로 출렁인다. 화려하지 않으면 아름답지 않을 것이라는 편견이 여지없이 무너지는 순간이다.

짧은 등산길이 아쉽다면 하산길은 증산초등학교 방향으로 잡는다. 1시간30분 가량 걸리는 코스이다. 내리막의 연속이라 힘들지 않은데다 능선을 따라 내려가기 때문에 지루하지도 않다. 한 등산객이 이 길을 따라 서둘러 하산하는 모습이 보인다. 가르마길을 따라 내려가더니 억새속으로 사라졌다. 햇살을 받아 빛나던 억새의 반짝임도 함께 사라졌다.

민둥산(정선)=글·사진 한창만기자 cmhan@hk.co.kr

◆정선 여행

○…수도권에서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두가지 길이 있다.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진부IC까지 간 뒤 59번 국도를 이용, 평창을 지나 정선으로 가는 것이 첫째. 영동고속도로 만종분기점에서 중앙고속도로로 갈아탄 뒤 신림(서제천)IC에서 나와 38번국도를 따라 정선까지 가도 된다.

열차를 이용하면 서울 청량리역에서 태백선을 타고 증산역에 내리면 된다. 증산역에서 정선선을 이용, 정선시내나 아우라지 혹은 내국인전용 카지노가 있는 강원랜드 방향으로 이동할 수 있다. 증산역 (033)591-1069

○…내국인카지노가 생기면서 숙소가 크게 늘어났다. 가격에 비해 시설도 좋은 편이다. 강원랜드호텔(033-590-7700)은 특급호텔규모로 정선에서 가장 좋은 숙소. 호텔내에 카지노가 위치하고 있다. 강원랜드 골프텔(590-7110)은 강원랜드 메인카지노가 생기기전까지는 스몰카지노라는 이름으로 운영되던 곳. 지금은 카지노시설이 모두 메인카지노로 옮겨 리조텔로 운영되고 있다. 이밖에 동호호텔(562-9000), 대왕장(563-0171), 화암장모텔(562-2374) 등이 있다.

○…정선 소금강 트레킹의 끝지점인 화암약수 인근에 음식점이 많다. 이중 고향식당(033-562-8929)은 강원도의 특산물인 곤드레나물로 지어내는 곤드레밥(사진)으로 명성을 날리고 있다. 1인분 5,000원.

정선에서 생산되는 쥐눈이콩 생산조합인 동트는 농가(033-563-3340)는 최근 전국적으로 부는 웰빙열풍에 힘입어 정선에 들르는 관광객이 반드시 가보아야 할 관광명소로 자리잡았다. 100% 국산콩으로 빚은 된장찌개가 일품.

■정선 소금강-시름잊고 흥얼흥얼~ 단풍속으로 들어간다

아리랑의 고장 강원 정선군. 억새로 유명한 민둥산도 좋지만 이왕 간다면 절정에 달한 단풍도 감상해보자. 이중 424번 지방도와 421번 지방도로 이어지는 길은 정선의 대표적인 관광명소인 화암8경으로 알려진 곳. 화암약수, 거북바위, 용마소, 화암동굴, 화표주, 소금강, 몰운대, 광대곡 등 8개 명소가 도로 인근에 도열하고 있어 편안한 여행을 즐길 수 있다.

특히 소금강 일대의 단풍비경은 설악산이나 오대산 등에 비해 덜 알려져 있어 호젓하고 편안하게 풍광을 맛볼 수 있다. 또 산 중턱을 따라 나 있는 등산로를 따라 소금강의 절경을 아래로 굽어보며 트레킹을 즐길 수 있어 새롭게 떠오르는 관광지 반열에 올랐다. 드라이브와 트레킹을 동시에 즐기는 소금강여행을 떠난다.

정선 소금강은 정선군 동면 화암1리에서 몰운1리까지 이어지는 4㎞ 구간을 일컫는다. 도로를 따라 난 계곡과 기암절벽의 모습이 기묘하고 장엄한 금강산을 옮겨다 놓은 듯해 소금강(小金剛)이라고 불린다. 소금강의 진가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산 아래에서 한번, 산 위에서 다시 한번 봐야 한다. 차량을 이용, 소금강의 시작점인 화표주(華表柱)를 거쳐 몰운대(沒雲臺)에 이르는 드라이브코스는 4㎞, 몰운대에서 화암약수까지이르는 등산코스는 8㎞이다.

화표주를 지나면서 절경이 이어진다. 어천으로 불리는 계곡을 따라 사모관대바위, 족도리바위, 삼형제바위, 평화바위, 돌두꺼비바위 등 온갖 형상의 기암괴석을 만난다. 바위에 붙은 활엽수에 단풍이 들어 바위덩어리가 울긋불긋한 옷을 입은 것 같다.

드라이브코스의 마지막 지점이자 트레킹의 첫 지점인 몰운대는 소금강절경의 백미이다. 천상 선인들이 선학을 타고 내려와 놀았다는 이 곳에선 구름조차 쉬어간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깎아 세운 듯한 절벽에 아슬아슬하게 걸린 노송과 단풍에 취하다 보면 쉽사리 자리를 뜰 수 없다. 마침 절벽 아래 계곡에는 수백평 규모의 너럭바위가 펼쳐져 있어 신선놀음을 즐기기에 더없이 좋다.

어느 정도 즐겼다면 이제 트레킹시간이다. 몰운대 인근 한치마을 뒤로 나있는 등산로를 오른다. 산중턱을 따라 길을 내 가파르지는 않다. 대신 등산로가 제대로 정비돼있지 않아 발밑을 조심하지 않으면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질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등산로 주위에는 단풍이 제법 물들었다.

등산로를 따라 가을속으로 들어간다. 발 아래로 조금 전에 지나왔던 도로와 계곡과 절벽이 눈앞에 펼쳐진다. 같은 풍광을 위에서 보니 느낌이 확연히 다르다. 3㎞를 지나니 뾰족바위가 나타난다. 비선대이다. 선녀가 하늘로 올라갔다는 곳이다. 신선과 선녀가 자주 등장하지만 결코 과장이 아니다 싶을 정도의 빼어난 경치가 이어진다. 절터를 지나 신선암에 이르면 트레킹은 절정에 달한다. 2평 남짓한 암자위에서 바라보는 산아래의 정경은 마치 천국에서 바라보는 속세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설암과 금강대를 지나 솔밭쉼터에 다다라 잠시 휴식을 취한 뒤 화암약수로 내려간다. 가파른 내리막길의 연속이다. 이 곳을 거꾸로 오른다면 상당히 버거울 터. 그래서 등산애호가들은 이 곳을 기점으로 몰운대로 향하기도 한다.

화암약수는 바위를 뚫고 올라오는 3곳의 샘터를 말한다. 철분과 칼슘성분이 많아 알싸한 맛이 일품이지만, 각각의 샘에서 솟아나는 물맛이 조금씩 다르다. 물 한모금에 머리까지 맑아진다. 가을이 뼈속 깊이 스며들었다.

소금강(정선)=글·사진 한창만기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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