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 이래 역대 조사(祖師)들은 본질을 보지 못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손가락과 달에 비유해 설명해 왔다. 불교 경전 원각경이 ‘부처님의 경전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과 같다’고 한 구절을 인용한 것이다.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킬 때 그 손가락으로 인해 허공의 달을 봐야 하는데 손가락만 보고서 착각한다면 달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어두운 것과 밝은 것도 구별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한다는 것을 깨우치는 설법이다.■ 1993년 열반한 성철 전 조계종 종정 스님도 생전에 이 경구를 즐겨 인용했고, 이후 일반에도 대중적 표현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가깝게는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가 잦은 말 실수로 인해 언론과 한나라당으로부터 갖가지 논쟁의 대상으로 몰렸을 때 자신의 진의가 오해와 왜곡의 공격을 받고 있다는 항변으로 써 먹은 적이 있다. 더 가깝게는 최근 정부 경제정책 등을 둘러싼 좌파 논쟁, 개혁 공방에서 등장한 적도 있었던 것 같다. 엊그제 청와대 김병준 정책실장이 ‘청와대 브리핑’에서 자신과 정부를 옹호한 글을 통해 "정부의 고민을 뒤집어 전달하고 좌파 운운하면서 정책의 본질을 흐려놓기 일쑤"라고 언론과 야당을 겨냥한 것도 굳이 대변해 주자면 달과 손가락의 비유가 가능할 수 있다.
■ 그러나 개혁을 표방하는 정부여당이 ‘알아야’ 할 말들 중에 이런 게 있다면 그 비유는 맞는 비유일까. "그저 입으로만 개혁을 외치면 다 된다는 식으로 하지 않겠다. 개혁을 무슨 완장처럼 팔뚝에 감고, 무슨 보검처럼 허리에 두르고, 자신만이 개혁의 화신인 양 굴지 않겠다. 그런 태도를 좌시하지도 않겠다. 그런 태도야 말로 개혁을 욕되게 하고, 개혁을 스스로 망치고, 개혁을 팔아 자신의 권력을 세우는 또 다른 반민주적 행태이기 때문이다."
■ 이 말에 따르면 정부여당이 떠드는 개혁이야말로 달을 가리키는 척하면서 손가락을 휘젓는 데 불과한 것이다. 이 말을 정부여당이 ‘알아야’ 할 말이라고 한 것은 바로 열린우리당 의원의 절절한 고백이기 때문이다. 그는 달변의 선동가이자 정통 운동권 출신의 젊은 재선 의원이다. 추석 때 지역구에서 올해만큼 욕을 많이 먹은 건 처음이라는 그는 그 자괴감과 각오를 ‘공인된 자로서 도리’라며 편지에 담아 보내 왔다. 그리고 그의 반성은 통렬하다. "노무현 정권이든, 열린우리당이든, 386세대를 통째로 들어서든 능력의 한계가 문제다." 그는 인정했는데, 청와대와 정부와 여당은 이를 인정하는가.
조재용 논설위원 jae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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