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명인가, 아니면 생명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자구책인가.이라크 주둔 미군병사 18명이 안전 미비를 이유로 보급품 수송을 거부하는 사건이 발생, 이들의 명령불복종에 대한 정당성 논란이 일고 있다고 미국 언론들이 18일 보도했다.
사건은 13일 이라크 탈릴에 주둔 중인 343보급중대 소속 18명이 헬기용 유류를 바그다드 북부 타지로 수송하는 임무를 거부하면서 발생했다. 이들은 "수송 차량에는 총탄을 막을 수 있는 장갑장치가 설치되어 있지 않아 병사들의 피격가능성이 크다"며 임무를 거부했다. 이들은 현지 사정상 시속 60㎞ 이상으로 수송차를 몰 수도 없어 저항세력의 총탄 세례를 피하기 어렵다는 점도 강조했다.
사건 발생 후 미군은 이들을 구금했으나 병사들은 국제전화나 이메일을 통해 사정을 미국의 가족들에 알렸고, 가족들은 즉시 언론에 공개했다.
남편의 전화를 받은 아내 패트리샤 맥쿡은 "남편은 보호장비 하나 없이 알몸으로 적지를 내달리는 처지"라고 남편의 불가피한 선택을 항변했다. 수송병들이 속한 미 13수송사령부는 올 4월 이후 만번 이상의 보급 임무를 수행하면서 26명의 병사를 잃는 등 전투부대 못지않은 사망률을 나타내고 있다.
사정이 이렇자 함구로 일관하던 바그다드 주둔 미군사령부는 17일 "병사들이 수송장비의 안전을 우려하는 상황"이라고 뒤늦게 사실을 인정하고 나섰다.
이번 사건은 세계 최강이라고 자부하는 미군이 방탄복과 같은 기초적인 보호장비나 군수품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는 반증이어서 부시 행정부를 궁지로 몰 것으로 보인다.
때마침 워싱턴포스트는 이라크 주둔 미군의 물자 부족과 허술한 보급체계를 국방부에 호소하는 리카도 산체스 전 이라크 주둔 미군사령관의 편지를 단독 입수해 보도, 이 문제가 대선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올 여름까지 이라크 주둔 미군을 총지휘했던 산체스는 지난해 말 국방부에 보낸 서신에서 "탱크, 헬기 같은 핵심 장비의 부품이 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정상적인 작전수행을 하지 못할 수 있다"고 토로했다.
이영섭기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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