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무관심에 ‘KIET 활용論’ 무산세계은행은 후진국에 차관을 줄 때 단순히 돈만 꿔주는 게 아니다. 프로젝트 자체를 세밀하게 관리했다. 일부 국가에서 차관을 본래 목적대로 쓰지 않고 엉뚱하게 정치적으로 사용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뼈저린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전자기술연구소(KIET) 프로젝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세계은행이 2,900만 달러를 일시에 준 게 아니다. 일의 진행 상황과 지출을 일일이 확인해 그때마다 돈을 내주는 방식을 취했다.
세계은행에는 반도체와 컴퓨터 전문가가 없었다. 때문에 전문가를 외부에서 채용, 물건을 하나 구매해도 최고 수준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흠잡을 수 없는 선택을 하도록 했다. 세계은행은 KIET 프로젝트 중에서 반도체 공장을 짓는 걸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한국 정부의 주장에 따라 구미 전자공업단지에 공장을 지었다. 반도체 공장은 지반이 튼튼해야 한다. 또 먼지 하나 없는 깨끗한 공기를 유지해야 한다. 그래서 미국의 인텔 공장을 설계했던 회사를 데려와 일을 맡겼다. 꽤나 비싼 건물이 될 수밖에 없었다.
공장만 있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깨끗한 물, 순수한 산소가스를 공급할 부대시설이 필요했다. 우리는 곡절 끝에 규모는 작지만 이런 조건을 충족하는 세계 최첨단 반도체 공장을 갖게 됐다. 컴퓨터는 반도체에 비해 건설 비용은 휠씬 적게 들었다. 그러나 공장을 지원하는 주변 산업이 없어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다층(多層) 인쇄회로기판(PCB)을 예로 들어 보자. 그때 한국전자공업은 TV를 수출했다. TV에 들어가는 기판은 2층이 고작이었다. 그런데 컴퓨터에 들어가는 기판은 5·6·10층은 돼야 한다. 따라서 컴퓨터 공장을 짓는 동시에 다층기판 공장도 짓지 않으면 안됐다. 1980년대 초만 해도 이런 저런 분야의 기술자들이 드물었다.
이런 상황에서 KIET의 시설은 매력적이었다. 잘 활용하면 컴퓨터와 반도체에 관한 노하우가 없는 한국의 전자 업체들도 큰 비용 없이 제품을 만들고 팔 수 있었다. 그야말로 인큐베이션 센터 역할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 기업들은 관심이 없었다. 나는 대기업 사장들에게 혀가 닳도록 정보 산업의 가능성을 설명했다. 그때 우리나라 대표적인 기업의 사장이 한 말이다. "이 박사, 컴퓨터 산업은 당신이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쉽지 않다. 우리는 수출로 먹고 사는데 수출을 하려면 3단계를 거쳐야 한다. 외국에서 기술을 도입한 뒤 국내에서 테스트마케팅을 해서 품질을 확인해야 한다. 그런 후에 양산해서 수출을 하는 거다. 그런데 우리가 IBM이나 DEC에 가서 기술을 달라고 했더니 주는 회사가 하나도 없었다. 또 국내에는 마이크로컴퓨터 시장이 미숙해 시험 생산해 볼 시장도 없지 않느냐. 그러니 우리가 시작할 사업은 아니라고 본다." 또 다른 대기업 사장은 "이 박사가 그렇게 자신이 있으면, 우리 회사로 들어와라. 그래서 한번 사업을 해보자"고 했다.
그러는 사이 통탄할 일이 생겼다. 세계은행이 우리나라에 KIET를 만드는 걸 보고 대만 정부가 가만히 있지 않았다. 대만은 세계은행 도움 없이 자체 능력으로 KIET와 비슷한 연구소를 설립했다. 외부에서 도와주는 것도 외면하는 한국 정부와는 달랐다. 일을 찾아 해낸 정부 덕분에 대만은 오늘날 세계 최고의 컴퓨터 생산국가가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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