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률 30%에 근접하며 인기를 끌고 있는 KBS 2TV 월화드라마 ‘오!필승 봉순영’(극본 강은경·연출 지영수)은 속이 뻔히 들여다보인다. 유일한 핏줄이란 비밀이 밝혀지며 자갈치시장 일꾼에서 졸지에 최고그룹 상무가 되는 주인공 오필승(안재욱)이 주인공이다. 엘리트이자 최고그룹 마케팅실장인 윤재웅(류진)과 재벌가의 후계자 오필승의 사랑을 동시에 받는 할인점 여직원 봉순영(채림)이 있다. 현대판 ‘강화도령’인 오필승의 성공담은 신분상승과 인생역전이 점점 실현 불가능한 꿈이 돼버린 요즘 대중들의 대리만족을 유도하고, ‘신데렐라’ 봉순영의 존재가 여성들의 판타지를 다시 한번 자극한다. 시청자들이 두 번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중첩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코믹장치와 만화적인 설정이 보태지면서 ‘휴먼 경쾌 멜로 드라마’를 표방한 ‘오필승! 봉순영’은 한없이 가볍고 말랑말랑해진다.하지만 ‘오!필승 봉순영’에는 뭔가 특별한 게 있다. 단막극 ‘S대 법대 미달사건’을 통해 변칙적이고 기발한 카메라 워크와 장면구성을 선보였던 지영수 PD는 이 드라마에서도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이를테면 첫회 도입부를 이금희 아나운서의 나레이션으로 처리하고, 전화통화 장면에서 화면 분할을 통해 3명의 대화내용을 각기 보여주거나, 드라마 마지막 부분에 팁을 붙여 쏠쏠한 재미가 있는 곁가지 이야기를 매회 제공하는 식이다.
사건의 전말을 친절하게 차례차례 제시하는 대신 화면감기, 회상, 상상 등을 통해 뒤섞어 보여주거나 연기자들의 모습을 바로 보여주지 않고 아래서부터 훑어 나가는 카메라 기법 등도 독특한 재미를 준다.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췄던 드라마들과 달리 ‘어떻게 이야기 할 것인 가’에 고심한 흔적이 군데군데 묻어 난다.
신데렐라 스토리와 촌놈 출세기가 범벅이 된 단순한 트렌디 드라마쯤으로 치부할 수 없게 만드는 점은 또 있다. ‘S대 법대 미달사건’에서 전교 꼴찌인 길남이 우연히 서울대 법대에 합격하게 되는 소동을 통해 학력제일주의 사회에 풍자를 시도했던 지 PD는 이번엔 밑바닥 인생 오필승을 부와 권력의 정점에 선 재벌가로 던져 놓는다. 비주류를 통한 주류세계 엿보기와 재평가를 통해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들에 대한 의미를 되묻는 것이다.
같이 밥을 먹으면서 한마디도 하지 않는 집안분위기와 일거수일투족을 감시 당하는 생활, 필승은 자신이 잃어버린 것은 가난하지만 따뜻한 순영 가족의 아침 식탁임을 알게 된다. 그렇다고 필승이 재웅보다, 비주류가 엘리트보다, 부자보다 가난한 사람이 행복하다는 이분법적 도식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모든 사람 사이에는 차이가 있고, 그 차이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을 인식할 수 있는 사람만이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필승과 순영, 순영과 재웅, 유정과 필승의 관계를 통해 보여줄 뿐이다.
단 한사람의 악인도 등장시키지 않고, 계급간의 차이를 극한 갈등의 요인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장치로 반전시키는, 한단계 업그레이드 된 ‘왕자와 거지’의 성인버전. 그래서 ‘오!필승 봉순영’은 빛난다.
김대성기자 loveli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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