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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50주년 기획시리즈-우리시대 주인공] <19> 공지영의 소설 '봉순이 언니'의 봉순이, 199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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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50주년 기획시리즈-우리시대 주인공] <19> 공지영의 소설 '봉순이 언니'의 봉순이, 1998년

입력
2004.10.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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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퀴벌레…, 그래 바퀴벌레다!언젠가부터 한 이불 덮는 인간이 입에 달고 살던 그 놈의 ‘마당 타령’에 질려, ‘옛다 마당!’하는 심정으로 이사 보따리를 푼 한옥이었다. 기와에 덧대 얹은 양철 지붕에 빗방울 듣는 소리며 툇마루에 걸터앉아 올려다보는 방석만한 하늘 가 달 보는 재미야 그렇다 치더라도, 주야장천 집구석에 틀어박혀 살림 이고 살아야 하는 주부 팔자 아닌가. 부엌 따로 화장실 따로, 안방 따로 건넌방 따로, 갈기갈기 찢어놓은 공간을 건너 다닐 때마다 꼈다 뺐다 해야 하는 신발노역 만으로도 오만 정이 다 떨어지던 판인데…, 바퀴벌레까지 목격하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그 ‘까맣게 반짝이는 긴 생명체’가 불결하고 징그럽다는 느낌보다는 아련한 옛 추억을 자극하는 것이었고, 거기에 봉순이 언니가 있었다. 바퀴벌레를 ‘돈 벌레’라며 주인집 식모 정자의 감시를 피해 도둑질하듯 한 움큼 잡아와 세 들어 살던 우리집 부엌에 풀어놓던 봉순이 언니! 돼지꿈 뒤에 로또 한 장을 뽑아 든 얼굴로 의기양양하던 그 몽환의 미소. 언니는, 37년 전 조숙한 다섯 살의 ‘나(소설 속 화자)’가 만난 최초의 세계였고, 첫 사람이었다.

봉순이 언니의 소식을 마지막으로 들었던 건 7년 전이었다. 그 때는 내가, 어느 영화의 한 대사를 빌어 말하자면 ‘결혼이란 기껏해야 행복한 망상이며, 결국은 적대적 정치 행위일 뿐’임을 절절히 느끼던 시기였다. 어머니가 전화 통화에서 전한 말이란, 쉰이 다 된 언니가 그 즈음 또 새 남자를 만나 집을 나갔고, 그 새 남자가 떠돌이 개장수라는 것이었다.

언니의 꽃답던 18살 처녀적 첫사랑이던 세탁소 말대가리 건달서부터, 폐병쟁이 남편과의 사별, 떠돌이 목수를 따라 나서 팔자를 고치나 하더니 애만 덜렁 하나 더 달고 쫓겨왔던 언니 아니던가.

나보다 여섯 살 아래인 만식이부터 줄줄이 아비 다른 아이 넷을 두고서도 님 찾아 떠도는 그니의 행실을 두고 어머니는 혀를 찼지만, 내 심정은 달랐다. 오히려 새 남자 만날 때마다 ‘목숨 걸고 낙관적이어야 했을’ 언니의 거짓 희망이, 목 마른 놈이 우물 파듯 짝을 갈구했을 그 절박한 갈증이, 허망한 신기루 같다가도 믿음직한 동지를 만난 듯 위안이 되던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나 젖먹이 시절부터 우리 헤어지던 그 어린 날까지, 언니가 준 힘과 위안이 지금껏 40년을 넘겨 산 내 삶의 보이지 않는 밑거름이었던 듯도 하다. 식구 아닌 식구로 늘 곁을 지키며 살갑게 나누던 정이 있어 모성 부재의 결핍을 이만큼이나마 메울 수 있지 않았겠는가.

말 그대로 바퀴벌레를 돈 벌레로 보던 그 남루했던 시절, 없는 집의 배운 것 없는 큰 딸들에게는 자기 입 하나 더는 것이 줄줄이 딸린 동생들의 밥을 지탱해주는 거의 유일한 대안이었고, ‘공장으로 돌리면 애 버린다’는 어른들의 기준에서야 식모 이상 가는 직업이 없었던 때 아니던가. 봉순이 언니야 피붙이로부터 버림받은 처지였지만, 마음씨 좋은 주인 만나 밥 안 굶고 나이 채워 고만고만한 자리에 시집가는 것이 스스로 꿀 수 있는 꿈의 상한이었다는 점에서는 그 시절의 여느 식모들과 다르지 않았다.

지금쯤 봉순이 언니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돈 벌레가 병균벌레로 밝혀진 마당이니, 그 사이 도깨비방망이라도 줍지 않은 다음에야 쉰넷된 언니의 경제적 여건은 뻔할 테고, 혹 결혼한 자식들 누구에게 얹혀 지낼 수만 있다면…. 언니야 늘 정에 약했으니까 손자손녀 챙기는 것에야 선수일 테고…. 내게 써먹던 그 시절 귀신이야기는 잊어먹지 않았어야 할 텐데….

세상은 우리 시대의 봉순이 언니처럼 거짓 희망을 품고 사는 이들을 동정하지만, 거짓 희망은 절망의 다른 이름일 뿐이라며 속으로 비웃기도 하겠지만, 언젠가 한 번쯤은 그들도 알게 될 날이 올 것이다. 때로는 그 세상을 지탱하는 힘이, 속고 넘어지고 짓밟히더라도 끝내 절망을 외면하려는 거짓 희망에서 나오기도 한다는 것을….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그림= 신동준기자

◆봉순이 언니는-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태어났다.

의붓아버지의 폭력에 못 이겨 일곱 살에 가출, 곡절 끝에 외가에 맡겨지지만 외숙모가 창경원 벚꽃놀이에 데려가서는 인파 속에 버린다.

한 교회 집사의 집에 맡겨져 식모살이를 하며 학대와 굶주림에 시달리던 중, 그 집에 세 들어 살다 이사를 나온 ‘나’(작가 공지영)의 식구를 따라온다.

열 여덟에 만난 동네 세탁소 총각과의 첫사랑에 실패하고, 시집을 가서는 남편과 사별한다. 그 뒤 목수, 개장수 등에게 순정을 주지만 잇달아 버림받고 줄줄이 아비 다른 아이 넷을 두게 된다.

■저임금에 쉴새 없는 60년대 식모살이 여성노동자 빈자리 채워준 ‘숨은 힘’

1967년 서울시 부녀과가 그 해 농촌에서 상경한 여성 6,740명을 조사했더니 18세 미만이 2,527명, 그 가운데 5,563명이 국졸이하 였다고 한다. 이들이 양동과 도동에 포진한 ‘뚜쟁이’를 피해 구할 수 있는 가장 무난한 직업이 나이, 학력, 용모 제한이 없던 식모(아니면 버스안내양) 였다.

여성잡지 ‘여원’ 66년 5월호는 "밥 굶지 않고 사는 서울 가정이면 의당 식모를 둬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는 내용의 글을 실었고, 한림대 건축학과가 낸 한 자료에서는 당시 분양 아파트마다 MR(maid room·식모방)을 뒀더라고 했다. 65년 약 5만명의 식모가 서울에 있었다는 게 당시 경찰 추산. 가톨릭청년회가 조사한 64년 식모의 평균 임금은 500~600원, 소고기 600g 한 근이 129원이던 시절이었다.

이들의 꿈은 미용사나 양재사 기술을 익혀 부엌데기 신세를 벗어나는 것이었나 보다. 하지만 보통 새벽 4시30분~5시30분에 일어나 밤 11시 넘어야 잠자리에 드는 생활이었으니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심지어 외출이 거의 없는 식모들이기에 인기 연애 상대가 연탄배달원이었다는 조사도 있다. 주인에 의한 폭행이나 비관자살, 절도, 유괴 등 식모가 관련된 범죄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숙식을 함께하는 전근대적 ‘식모’는 60년대 후반 이후 시간제 ‘가정부’ 형태로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전쟁 과부들의 생계난 타계책으로 시간제 가정부제도가 점차 활성화하면서 66년 이후 YWCA 등 종교단체는 수강생을 모집해 예절강습 등의 직업교육도 실시했다.

그 시절 ‘봉순이 언니’들은 산업화로 여성노동력이 부각되던 초기 산업생산노동과 가사·육아를 병행할 수 없던 고단한 근로 여성들의 빈 자리를 메워주던, 그 어떤 정부의 산업통계도 거들떠보지 않아 공식화하지 못한, ‘숨은 힘’이었다. (역사학연구소 ‘1960년대 여성노동’ 등 참조) 최윤필기자

■그때 한국일보에는-식모 인권·새이름 찾아주기 이슈화

소설에서 봉순이 언니와 다섯 살 짜리 꼬마 짱아의 에피소드가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1967년 즈음, 각 신문은 기획, 시리즈 등을 통해 식모의 인권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한국일보는 66년 11월 ‘집안 속의 남- 식모의 실태’ 특집기사를, 12월에는 인권옹호주간 기획시리즈로 ‘휴식은 잠잘 때 뿐’이라는 제목으로 그들의 생활기사를 실었다. 폭행, 구타는 예사였고 전기고문까지 당했다는 기사도 70년대 후반까지 끈질기게 이어진다. 주인 집 패물을 훔쳐가거나, 아이를 유괴하는 등 식모들의 범죄도 적지 않아 당시 서울시경은 ‘식모 신분카드제’ 도입을 추진하기까지 했다.

60년대 말부터는 시간제 가정부, 파출 가정부 제도를 소개하는 기사가 눈에 띈다. ‘식모’라는 호칭이 주는 모멸감을 희석하려는 듯, 시간제가정부를 ‘수고 엄마’ ‘수고 언니’로 부를 것을 권장하는 기사도 있다. 기독교장로회 여신도회가 ‘식모’를 대체할 호칭을 공모한 결과 ‘도움마’ ‘부엌언니’ ‘상경댁(上京宅)’ ‘수고모’ ‘유신댁’ ‘부엌사’ ‘통일댁’ ‘도움이’ 등이 제시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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