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요리사음식을 만드는 것이 왜 좋을까? 원래 조리사도 아닌 다른 일을 하던 사람들이 뒤늦게 요리 공부에 나섰다. 르 꼬르동블루에서 열심히 요리 실습을하고 있는 6명의 여성. 이들이 한 자리에 모여 음식과 요리에 대한 얘기들을 털어놨다.
▲ 참가자
임지선(30) 이대대학원 임상영양학 전공, 홍보대행사, 광고회사 상암기획근무경력
허영경(24) 한양대 국악과 졸, 여행사, 공연기획사 홍보담당 근무경력
박서란(43) 스튜어디스 근무 경력, 인사동에서 전통음식점 '다울' 경영중
최윤정(29) 스위스 호텔학교 졸, 롯데관광 통역가이드로 근무
유예령(31) 홍대 미대 박사과정, 서양화 작가, 건대 디자인학부 출강중
이은옥(25) 코오롱 비서실 근무
임지선-“처음 한식을 배우다 지금 프랑스 요리를 배우고 있어요. 요리에도 창의적인게 필요하다는 생각에서죠. 이젠 조리사도 전문직이에요. 경제나 문화 수준이 높아질수록 더 새로운 음식을 찾게 되거든요.”
허영경-“음식이 종합예술이 돼가고 있는 건 분명한 사실이에요. 미술은 눈으로만, 음악은 소리로만 느끼는데 음식은 맛 뿐 아니라 영양, 시각적인면에서도 충족시켜야 되잖아요.”
박서란-“글로벌 시대라 이제 한국 것만 고집해서는 안돼요. 트렌드도 무시할 수 없구요. 정통을 배워 문화와 기호에 맞게 병행해 나가야 합니다.”
최윤정-“세계를 많이 돌아다녀 보니 음식은 곧 문화에요. 문화나 국민성을 이해하는 첫 걸음은 음식입니다. 외국 음식을 그 나라 사람에게서 배우면 고유의 입맛은 물론, 어떤 유래로 그 음식이 내려오는 것인지를 알 수있어요.”
이은옥-“음식을 안다는 것이 이젠 중요한 상식이 돼가는 것 같아요. 조리사가 되려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음식을 알면 통하잖아요.”
허영경-“조리사라는 직업은 평생직이에요. 경기에 민감하지 않을 것 같구요. 주변에 요리를 배우는 남자들도 여럿 있는데 좋아하는 일을 평생 하겠다라는 생각이더군요.”
임지선-“이제 음식은 양이 아니라 질로 승부해야 해요. 조금이라도 맛있게 먹고 즐겁게 대화하는 것이 중요하죠. 잔칫집처럼 많이 마시고 먹는 것은 옛날 얘기죠.”
최윤정-“나중에 어디서 어떤 일을 하게 될지 모르잖아요. 일단 요리가 좋아서 시작했고 또 배워 놓는 거죠. 어쨌든 남편에게는 쓰일 일 아니에요!”
박서란-“요리는 즐겁지만 힘들어요. 그래도 배우면서 ‘이렇게 표현이 되는구나’ 느낄 때는 힘든 걸 잊게 돼요.”
이은옥-“음식과 관련한 외부 일을 여러 번 했는데 입맛에 맞추가가 여간 힘든게 아니란 걸 알았어요. 그래서 직접 요리를 배우고 음식에 대해 알아야겠다고 생각했죠. 음식을 배우는 것도 제게는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에요.
허영경-“음식과 조리일은 점점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있어요.”
유예령-“저는 예술을 하다 보니까 시각적인 것에 신경을 많이 쓰는데 음식도 마찬가지에요. 색상이나 질감이 매우 중요하죠. 이 점에서 음식과 예술을 같습니다. 그림을 그릴 때는 요리하는 기분으로, 요리할 때는 그림을 그리는 기분으로 해요. 그럼 도움이 되죠.”
박서란-“요리 선생님이 반죽하고 재료를 다듬는 것을 보면 꼭 수양하는 사람 같아요. 노동이나 힘겨움 같은 느낌이 전혀 없어요. 오히려 요리를 하면서 마음이 안정되는 걸 봅니다.”
임지선-“요리나 음식 만큼 솔직한 게 없는 것 같아요. 성경 말씀처럼 한대로 결과가 나오잖아요. 똑 같은 레시피라도 속도만 달라도 맛이 확 달라져요.”
유예령 “쉐프가 진급할 때 마다 모자 높이가 올라가는 것처럼 저도 높은모자를 써보고 싶어요. 그래서 요즘 설거지 하는 일도 궂은 일이라 생각이안듭니다.”
/박원식기자 parky@hk.co.kr
■왜 조리사가 되는가
남들이 식사할 때는 반드시 일해야만 합니다. 근무지가 실내인데도 항상 뜨거운 열기로 덥기만 하구요. 겨울이건 여름이건 마찬가집니다. 그리고 항상 깨끗해야만 합니다. 새하얀 제복에 모자까지 쓰구요. 직업이 조리사이기 때문입니다.
한 때 밥집에서 일하냐는 질문을 받은 적도 있지요. 꽤 오래 전 얘기 같네요. 사회에서 그리 대접받지 못하는 직업군에 속했던 적도 있는 것 같네요. 글쎄! 지금도 그럴지 모르지만…. 물론 앞으로는 완전히 달라지리란 건너도 나도 느끼고 있지 않나요!
조리사가 되기 위해 꽤 치열한 경쟁을 치르기도 했습니다. 웬만한 명문대입시나 유명 기업에 입사하는 것 못지도 않죠. 그 다음 기다리는 것은 눈앞의 영광이라기 보다는 주방에서의 힘든 작업과 고난입니다.
그것도 오랜 시간의 험난한 과정이겠죠. 창의력도 있어야 된다, 순발력도 필요하다, 체력이 중요하다, 요구하는 것도 많습니다. 그래도 먼 훗날 밝게 웃을 순간을 위해 어떤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꿈꾸는 미래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음식은 이제 끼니 차원을 넘어 문화가 되고 산업의 일부로 지위가 올라갔습니다. 음식이 사회를 변화시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죠. 그래서 우리 조리사들의 어깨도 더욱 무거워지는 듯 합니다.
/글 박원식기자parky@hk.co.kr, /사진 배우한기자bwh3140@hk.co.kr
■'챌린지 투 쉐프' 지망생들에게 듣는다
“조리사가 되려면 순발력이 있어야 돼요. 과일 디저트 주문을 받았는데 칼이 없고 수저와 포크 뿐이라면 어떻게 하겠어요? 다른 사람은 눈을 가리고 손으로 만져만 보고 무슨 재료인지 맞혀 보세요.”
지난 달 말 숙명여대 안의 한국음식연구원. 조리사가 되려는 52명의 지원자들이 면접관들 앞에서 땀을 뻘뻘 흘리고 있다. 이들은 음식전문 케이블TV인 푸드채널이 주관하는 프로그램 ‘챌린지 투 쉐프’(Challenge to Chef) 2기에 응모한 조리사 지망생들. 지원자 1,500여명 중 서류심사를 거쳐선발된 정예 멤버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또 다시 치열한 경쟁을 치러내야 한다. 3팀으로 나눠 실시한 이날 면접에서 최종 선발된 인원은 겨우 16명. 지난 8일 첫 수업을 가진 이들은 3주 째마다 성적순으로 한명씩 탈락하는 ‘서바이벌 게임’ 방식의 교육을 받고 있다.
이들이 응시한 이벤트는 조리사의 꿈을 가진 도전자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주어 전문 조리사로 커가는 청년실업극복 리얼리티 프로그램.
선발과정은 물론, 배우는 내용, 평가까지 모든 과정이 시청자에게 고스란히 방영, 공개된다. 방송사의 인기프로그램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조리사 교육 과정에 몰려든 수많은 사람과 높은 경쟁률은 우리 사회에서 조리와 조리사에 대한 달라진 인식을 보여주고도 남는다.
“요리하다 벌써 손을 다쳤네.” 면접관 대표인 한영실 원장(식품영양학)교수의 한 마디에 응시자의 대답이 이어진다. “원래 쓰던 제 칼이 아니라 익숙치 않아서…”
“나는 요리에 이런 점에 강점이 있다고 소개해 보세요.”
“이 프로그램을 유심히 지켜 봤는데 솜씨가 부족한 사람을 숙달시키는데 주안점을 둬 전체 팀을 이끌거나 서포트하는 사람이 없더라고요.” … “외국에 가 보니 한국 음식을 갖고 직접 외국인과 상대하는 경우를 보지못해 아쉬웠습니다.” 면접에서 응시자들이 전하는 요리에 대한 철학과 다양한 경험이 꽤 수준 높다.
“요리사는 굉장히 부지런해야 돼요. 몸으로 뛰는 직업이거든요. 본인은 부지런하나요?” “음식은 창조성이 있어야 돼요. 배우는 데는 한계가 있어요. 고정관념을 얼마나 깰 수 있는지 보여 주세요.” “주방에서는 초를 다투며 예측할 수 없는 일이 항상 일어나거든요.” 면접관들이 퍼붓는 질문에도 요리에 대한 프라이드와 깊은 성찰이 묻어난다.
이들과 같은 경쟁을 거쳐 교육과정을 이수한 1기 졸업생은 10명. 지난 6월부터 이탈리아 요리학교인 ICIF에서 16주 일정의 교육을 마친 이들이 최근 강의실에 다시 모여 요리에 대한 철학과 조리사로서의 꿈 등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졸업을 축하하는 친목을 겸해 열린 이날 모임은 ‘납작 만두’ 요리로 시작됐다. 대구에서 올라온 졸업생 배정훈씨가 사온 납작 만두를 보곤 즉석에서 프라이팬을 꺼내 구으면서, 또 먹으면서 얘기를 시작하는 이들의 모습은 요리에 대한 사랑과 훈련된 조리사로서의 기질을 여과없이 드러낸다.
▲ 태석호(29ㆍ전 롯데호텔 근무)-원광대 행정학과를 다니다 군 제대 후 진로를 바꿔 경기대 외식조리학과에 편입, 조리사의 길을 선택했다. 최우수 성적으로 이탈리아 요리연수라는 부상을 거머쥐었다.
“조리사로서의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지만 그렇게 두드러지게 보이지도 않았는데 최우수 성적을 받게 돼 감개무량합니다. 11개월의 조리사 경력이 있긴 해도 빡빡한 수업 일정과 과중한 숙제가 결코 만만치 않았어요. 이제 하나를 먹더라도 생각을 하고 먹는 시대에요. 그저 배불리 먹으면 된다는 것은 옛날 얘기죠. 스파게티 하나도 맛있게 하는데를 찾아가잖아요. 그 스파게티가 그 스파게티가 아닌거죠. 조리사도 시대의 변화에 부응해야 합니다. 개성과 철학이 담긴 음식을 팔 수 있고 정년도 없으니 조리사가 좋은 직업이잖아요.”
▲ 배정훈(23ㆍ대구 경일대 국제통상4)-어릴 때부터 조리사가 되는 것이 꿈이라 대학에 다니면서도 조리사 자격증을 5개나 땄다. 한식 양식 중식 일식 복어 조리까지 할 수 있는 만능 조리사.
“전공은 무역이지만 졸업 후 주방에서 일할 거에요. 요리한다는 것 자체가 좋아요. 먹을 때 맛있고 즐겁게 음식을 만드는 게 행복하거든요. 아르바이트도 웨이터부터 주방일까지 외식 관련 일만 해왔어요. 조리사 일을 하면 왠지 밥은 안굶을 것 같아서…. 요리는 제 인생이에요.요리 안에 희로애락이 다 있어요. 슬플 땐 삭혀주고 기쁠 땐 배가시켜주는인생의 양념, 첨가제 같아요.”
▲ 백성훈(23ㆍ와인숍 가나와인 매니저)-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다 자퇴, 군대에 갔다. 제대 후 도시개발공사에서 기능직으로 하수구 뚫는 일을 하다 그만두고 와인숍에서 일하고 있다.
“워낙 먹는 걸 좋아하는데다 요리를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해 지원했어요.교육이 힘들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예상보다 100배는 더 힘들었어요. 오이 12kg을 0.2mm 두께로 썰으라는 돌발과제는 살인적이었어요. 한꺼번에 썰면 힘이 들어 하루 2시간씩 썰었는데도 5주가 넘게 걸렸거든요. 아직도 오이 냄새만 맡아도 싫어요. 닭뼈를 10분 안에 바르라는 과제, 이탈리아 조리 용어 500개 외우기 등도 결코 쉽지 않았거든요. 아직까지도 다 못 외어요. 어쨌든 음식은 이제 생존이 아니라 즐기는 문화에요. 좋아하는 사람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면 얼마나 기뻐요.”
▲ 최장헌(23ㆍ경희대 조리과학3)-군대 제대 후 우연히 TV를 보다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됐다. 외국의 유명 요리학교에서 한식을 가르치는 것이 꿈.
“선진국에서는 외식 산업이 ‘짱’이에요. 그런데 우리나라 음식은 왜 외국에서 성공하지 못하는지 아쉽기만 해요. 지금 맘 같아서는 한식을 세계에 널리 알리고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다양한 음식을 배우고 싶어요. 교육참가자들의 요리에 대한 열정이 엄청나게 뜨거웠던 것 같아요. 체계적으로 요리를 배우며 같이 만들고 같이 대화하면서 더 돈독해지고 즐거웠어요. 그래서 추석때 집에 내려가서도 할머니랑 같이 전을 부쳤다니깐요.”
▲ 안성수(26ㆍ동국대 관광경영졸)-레스토랑 경영에 관심이 있어 매니저를 하려다 생각이 바뀌어 조리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내년에 외국으로 요리 유학을 떠날 계획.
“주방 일이 힘들 것 같아 레스토랑 지배인을 하려고 했는데 주방 일에 더매력을 느끼게 됐어요. 주방에서 바쁘게 일을 하며 손님이 맛있게 먹는 것을 보는 게 더 좋아지더라구요. 외국에 나가서 한국인이 한국 음식으로 정상에 오른 경우가 없는 건 체력, 언어 등 여러 문제 때문으로 봐요. 노브나 로꼬니스브리또처럼 조리사로서 세계적인 스타가 되는 것이 제 꿈이에요. 20년이 걸리든, 30년이 걸리든 일단 도전해 볼거에요. 누군가는 그런 도전을 해야 돼요. 그래서 우리 한식을 더 공부하고 싶은 생각도 간절해요. 조리사는 남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직업이거든요.”
▲ 정은주(29ㆍ예비 주부)=회사를 다니다 그만 두고 요리 강좌를 열심히 다니다 응모, 교육을 받게됐다.
“결혼을 앞두고 있는데 이후에도 요리와 관련한 일을 하고싶어요. 5년 후의 주방에서 칼을 들고 일하는 나의 모습에 대해서 자주 상상하곤 해요. 잘 배워 누군가 가르치고도 싶어요. 특히 어린이들에게 요리를 가르쳐 주는 것에 관심이 높아요. 요리는 요리로 끝나는 게 아니죠. 요리를 통해 문화를 배운다는데 의미가 큽니다. 요리는 창조에요. 똑 같은 재료라도 수많은 요리를 만들어 낼 수 있고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 나가는게 신기하기만 해요. 새로운 조리법을 보면 궁금증이 생겨 참을 수가 없어요. 음식을 통해서 좋은 사람까지 만날 수 있잖아요.”
▲ 김진효(21ㆍ한국관광대 조리과졸)-호텔 주방에서 아르바이트 경험을 갖고 있다. 전문 조리사가 되는 것이 꿈.
“이탈리아 요리에 관심이 많아 응모했는데 하다 보니 이탈리아 요리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됐어요. 우선 너무 맛있고…. 이탈리아 요리는 쉬운 것 같으면서도 만드는 사람의 능력이 그대로 나타나죠. 꾸밈이 많지 않고 재료 본연의 맛에 충실하려는 것도 돋보이고요. 파스타를 매우 좋아하는데 실제 해보니 제대로 만드는 게 무척 어렵더라구요. 그래서 요리는 인생의 영원한 과제이고 주방은 제 안식처에요. 요리는 사람의 마음도 움직일 수 있답니다. 만드는 이가 정성을 쏟으면 먹는 사람도 그 정성을 똑같이 느낀다니까요.”
▲ 성지연(20ㆍ서울대 경제학부2)-요리를 전혀 해본 적이 없는데도 응시,교육생으로 뽑혀 전과정을 무사히 치러냈다.
“전공인 경제학 보다 요리가 더 좋아요. 전에는 요리를 전혀 안했는데 우연히 영국의 조리사 스타인 제이미 올리버의 프로그램을 보곤 반하게 됐어요. 요리 경험은 사실 이번이 처음이에요. 전에는 파 껍질도 못깠다니깐요. 성적이 나빠 혼도 많이 나고 너무 힘들었는데 오빠들이 많이 도와줬어요. 칼질도 가르쳐 주고 이제는 계란말이나 단호박수프 정도는 잘 만들게 됐어요. 어렵고 생소하던 요리가 이젠 아주친숙해졌고 그런 과정이 요리의 매력같아요. 애써 만든 음식을 한숟갈 뜰때의 긴장감이란…어쨌든 경제학적으로 외식은 크게 발전할 거라는 확신이들어요.”
▲ 유호성(21ㆍ경희대 조리학3)-평소 이탈리아 요리를 좋아하다 보니 응시하게 됐다. 앞으로 태국 레스토랑 운영에 특히 관심이 크다.
“이탈리아 요리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우물안 개구리더라고요. 교육 과정에서 많이 배웠습니다. 특히 이탈리아 요리의 참맛을 느꼈는데 사랑이 듬뿍 담긴 요리라는 것이에요. 프랑스와 달리 화려하지도 않고, 한국 요리의 손맛도 나지 않지만 소박하면서도 푸짐한 것이 정을 느끼게 해주는 것 같아요. 요리는 그 나라의 문화와 생활 패턴을 말해줍니다. 요리만 보면 만든 사람이나 나라의 성격이나 가치관까지 이젠 알 수 있을 것 같다니까요. 가장 한국적인 음식이 가장 세계적인 요리라고 생각해요.”
/박원식기자parky@hk.co.kr
■이색 요리사 박찬일씨
여성잡지 기자에서 방송작가로, 그리고 이탈리아로 요리 유학. 이어 레스토랑 조리사와 외식잡지 편집장을 거쳐 지금은 프렌치 레스토랑의 조리사….
박찬일(39)씨는 외식업계에서 이색적인 경력을 가진 조리사 중 하나로 손꼽힌다. 늦은 나이에 조리사로 첫발을 내디딘 늦깍이인데다 잡지 편집장까지 지낸 드문 이력서를 갖고 있어서다. “매일 남의 이야기만 다루는데 지쳤다고나 할까요. PC 앞에 앉아 늘 같은 일과 씨름하기 보다 자신의 일을만들어 보고 싶었어요.”
쉽지 않은 인생 전환을 결심한 것은 1999년. 여성지 ‘우먼센스’ 기자로 일하다 홀연 이탈리아 유학을 선택했다. “IMF로 주변 상황이 어수선했던데다 때마침 이탈리아의 유명 요리학원인 ICIF에서 유학생을 모집하는 광고를 봤어요.”
잡지사에서 요리 관련 취재를 많이 해 봤던 그는 양식에 도전해 보기로 하고 과감히 사표를 던졌다. 당시 국내에서 이탈리아 음식에 대한 인기가 치솟고 있어 그때 시작해도 늦지 않을 것 같아 보였다.
“처음 6개월이면 웬만큼 배워 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큰 오산이었죠. 만분의 일 정도 배웠다고 할까요. 특히 와인은 배우다 보니 너무 재미있고 경이롭기까지 했어요.” 다시 어학 연수부터 시작한 그의 유학 생활은 3년으로 늘어났다. “음식이니까 그냥 선생이 요리하는 대로 따라 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음식은 문화인데 말이 안 통하니 아예 음식 조차도 이해 못한 셈이지요.”
음식 솜씨가 좋고 한식당도 운영했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선지 그는 입맛이 무척 까다롭다. “기자 생활을 할 때도 동료들과 같이 밥먹으로 가기 힘들 정도였어요.
제가 이 식당은 이래서, 저 식당은 저래서 안된다고 시어머니처럼 지적하기 일쑤였죠.” “직장 생활 시작 전에는 햄버거도 못먹었는데 양식을 먹다 보니 맛있어졌다”는 그는 집에서 요리책을 보며 직접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이 취미를 넘어서 직업까지 돼버렸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청담동의 이탈리아레스토랑 조리장으로 일하다 잠시 외식전문 잡지 편집장으로 외도하다 최근 방배동의 프렌치 레스토랑‘라사브어’ 조리사로 컴백했다.
“후배들이 저한테 와서 지금 조리사 공부를 시작하면 어떻겠냐고 물을 때마다 우선 말리고 봅니다. 다른 길을 간다는 것은 새로운 도전일 뿐 결코 그 자체가 해결책은 아니라는 이유에서죠. 조리사의 길은 다른 직장에 비해 창의적이고 기회가 더 많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어떻게 성공하느냐는 별개의 문제이죠.”
/박원식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