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에 발표한 첫 음반 ‘김민기’는 바로 압수 당했고, 1978년 ‘공장의 불빛’은 카세트테이프에 복제했습니다. 이들은 제게 친자식과 마찬가지인데, 버려두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군사독재정권시절 저항의 상징이었고, 이젠 성공한 뮤지컬 제작자로 자리 잡은 김민기(53)씨가 30여년간 발표한 음악들을 총정리한 패키지 앨범 ‘Past Life of 김민기’와 ‘공장의 불빛’ 리메이크 판을 세상에 내놓았다.
또한 그의 음악인생을 담아낸 책 '김민기'(김창남 편저)도 음반 복원에 맞춰 함께 출간됐다. ‘Past Life of 김민기’는 71년 LP로 나온 ‘김민기’와 ‘엄마 우리 엄마’(1984년), ‘아빠 얼굴 예쁘네요’(1987년), ‘김민기 1.2.3.4’(1993년)를 여섯장의 CD에 담아냈고, 이번에 새 옷을 입고 선보인 ‘공장의 불빛’은 정재일(22)이 프로듀싱을 담당, 젊은 감각으로 편곡했다.
“제발 원작 무시하고 마음껏 만들어 보라고 부탁했어요. 1978년 ‘공장의 불빛’을 녹음할 당시 상상할 수 없이 암울한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했기에 지금 제가 새롭게 할 것이 없다고 생각해서 전적으로 맡겼습니다.” 김민기씨는 “여러 장르의 음악들을 잘 복원해 낼 사람은 정재일 뿐이라고 생각해 부탁했는데, 결과가 좋게 나와 행복하다”며 ‘공장의 불빛’과 얽힌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10ㆍ26이 일어나기 꼭 1년전 시작해 겨우내 작업을 했어요. 처음에는 큰 사명감을 가지지는 않고 주변에서 겪은 경험을 담아내다가 이 작업이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점점 들었습니다. 저 혼자라면 탄압이 두렵지 않았지만 관련된 수많은 사람들이 걱정되었어요. 노래가 담긴 카세트 테이프 200개를 복사해 배포하고 곧바로 농촌으로 내려가 숨었는데, 이때가 제 삶의 분기점이 되었습니다.”
‘공장의 불빛’은 79년 송창식의 개인 스튜디오와 이화여대 방송반 스튜디오에서 불법으로 제작된 뒤, 은밀하게 복사돼 대학가와 노동현장에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테이프에 수록된 노래들은 80년대 이후 지금까지도 노동운동 현장에서 널리 불리고 있다. ‘공장의 불빛’은 봉제공장을 배경으로 편지-교대-사고-작업장-야근-음모-선거-싸움과 패배-해고와 새로운 결의 과정이 유기적으로 이어지는 일종의 오페라로 파격적인 내용과 가사로 새로운 시도가 눈에 띄는 작품이다.
정재일은 “불협화음으로 시작하는 ‘공장의 불빛’은 핑크플로이드 음악과 비슷하고 국악과 민요적 요소가 들어있다’며 “열악한 상황에서 이런 작품을 만들고 또 사람들이 많이 들었다는 말을 듣고 놀랐다”고 ‘공장의 불빛’을 처음 접했을 때의 소감을 피력했다. 그는 우리나라 정악과 편악을 접목하고 여기에 전자음악도 덧붙여, 복사를 거듭해 이미 많이 뭉개진 원음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다.
“국가보안법 폐지반대 운동을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김민기씨는 정치적 발언을 절대하지 않겠다면서 “세상이 많이 변했으나 지금의 노동운동이 ‘공장의 불빛’이 만들어졌던 때의 소박했던 초심을 기억했으면 좋겠다”는 부탁만 했다. “뮤지컬 세 편을 무대에 올렸고 음반정리도 됐으니 욕심이 없습니다. 앞으로 새로운 일을 하려는데 어린아이들 관련된 일을 할 것 같아요. 가수로서의 꿈은 꿔본 적이 없고 앞으로 그럴 계획도 없습니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