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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스트레스 줄여야 인류도 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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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스트레스 줄여야 인류도 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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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0.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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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말 개봉한 피터 잭슨 감독의 영화 ‘반지의 제왕 II: 두개의 탑’에서 악한 마법사 사루만의 기지를 무력화 시킨 것은 나무의 요정 ‘엔트’다. 오래된 숲의 나무를 잘라내 황폐화시키는 오크(Orcㆍ괴물)들의 만행을 보다 못한 나무들이 악한의 소굴을 몸소 때려부수는 장면은 인간의 오만함을 경고한다. 실제로 마냥 순하게 보이는 식물도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많은 방어기제를 갖고 있다.현대인들이 가장 많이 쓰는 단어 중 하나인 ‘스트레스’. 덥다고 에어컨을 틀 수도 없고 보기 싫다고 돌아앉을 수도 없는 식물들은 인간보다 훨씬큰 스트레스를 온 몸으로 이겨낸다. 뜨거운 태양,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가뭄과 홍수, 난데없는 한파에다 인간이 날마다 만들어내는 많은 오염물질 등 식물이 극복해야 하는 스트레스는 수없이 많다.

최근 대전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서 열린 ‘환경생명공학: 식물의 산화스트레스 극복기구’ 컨퍼런스는 식물이 스트레스를 이겨가는 과정을 통해 환경과 인간이 어우러져 살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는 회의였다. 식물은 어떤방법으로 스트레스를 극복하며 인간은 여기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산화 스트레스 이겨내는 항산화물질

식물은 태양 에너지를 이용해 인간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산소와 식량은물론 각종 의약품과 산업용 소재를 생산하는 지구상에서 가장 효율적인 공장이다.

그러나 1950년대 이후 화석에너지의 사용이 급격히 늘면서 지구 환경은 점점 악화되고 식물의 종류와 숲의 면적도 점점 좁아지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21세기가 가기 전에 인류는 생존의 위협을 받을 것”이라는 경고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식물의 스트레스에 대한 적응능력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식물의 스트레스는 크게 병충해와 같은 생물학적 스트레스와 대기오염물질, 온도변화 등 비생물학적 스트레스로 나뉜다. 식물이 스트레스를 받으면식물 안의 산소가 전자와 반응하면서 과산화수소, 수퍼옥사이드 라디컬(SAR) 등의 ‘활성산소종(ROSㆍreactive oxygen species)’으로 변한다.

강한 독성을 가진 ROS는 생체의 정상적인 대사과정에서도 소량 만들어지지만 외부 스트레스를 받으면 과다하게 생성돼 세포막과 단백질을 분해하고DNA 합성을 저해할 뿐 아니라 엽록소 파괴, 광합성 억제 같은 치명적 피해를 식물에 남긴다.

사람 역시 스트레스를 받으면 ROS가 몸 안에서 생성되며 ROS에 의한 피해는 ‘산화 스트레스’라고 일컬어지는데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ROS는 암을 유발하는 가장 유력한 물질 중 하나다. 몸을 움직여 외부 스트레스를 삭이는 동물과 달리 식물은 몸 안에서 ROS를 없애는 항산화물질을 고농도로 만들어낸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아스코르브산염(AsA)라고도 불리는 비타민 C다. 인간의 몸 속에서는 전혀 만들어지지 않는 비타민 C는 대부분의 식물에 고농도로 존재하고 있는데 이는 ROS를 제거할 뿐 아니라 비타민 E를 보전하고 엽록체막을 만들어내는 등 다양한 생리작용을 갖는다.

환경 스트레스에 유난히 약한 애기장대의 돌연변이를 연구한 결과 비타민C의 함량이 현저히 낮은 것도 이 물질이 스트레스를 이겨내는데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해준다.

SAR을 없애주는 수퍼옥사이드 디스뮤타제(SOD) 역시 식물이 만들어 인간에게 도움을 주는 물질이다. SOD는 산소를 소비하는 모든 생물에 존재하지만식물에서의 농도가 가장 높다.

ROS가 생성되자마자 이를 제거하는 SOD는 염증을 없애주는 기능을 지녀 류마티스 관절염 등 각종 퇴행성 질병의 치료제로 쓰이고 있다. 이 밖에 녹차의 카테킨, 마늘의 갈릭산 등도 강한 항산화물질이다.

***식량 및 환경 문제 해결할 열쇠

식물의 스트레스가 커질수록 항산화물질의 농도는 높아진다. 건조하고 척박한 땅에서 자라는 인삼이 극도로 높은 항산화물질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그 한 증거.

피부에 닿으면 심한 알레르기 증상을 일으키는 옻나무에 관한 연구도 이를증명한다. 옻나무에 상처를 내 추출하는 옻나무 수액에는 항산화물질인 ‘우루시올’이 대량 들어있으며 과학자들은 이 물질을 이용한 화합물이 난소암, 백혈병, 유방암 등을 포함한 29개 인체 암세포의 생장을 억제한다는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다.

최근 연구는 식물의 항산화물질을 인간의 질병치료에 이용하는 것을 넘어식량문제 해결과 환경 보전이라는 더 큰 숙제에 초점을 맞춘다.

생명공학을 이용, 식물의 항산화물질 생성 능력을 촉진시키면 식물이 열악한 환경에서 더 잘 견딜 수 있는 것과 아울러 각종 작물 생산 능력이 향상돼 미래의 식량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뭄, 냉해, 높은 염분농도 등 환경 스트레스는 작물의 생산량을 떨어뜨리는 주요 요인으로 병충해에 의한 손실의 10배 정도가 매년 환경 스트레스에 의해 유실되는 상황.

지구상에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은 육지 면적의 약 10%지만 이 중 80%이상이 건조 및 산성화 등 환경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어 항산화물질 생성을 촉진시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연구가 시급한 실정이다.

***생명공학硏 재해耐性 감자-고구마 개발

한국생명공학연구원 환경생명공학연구실 곽상수 박사팀은 이번 회의에서 엽록체에 환경 스트레스를 잘 견딜 수 있게 하는 유전자를 도입, 척박한 환경을 이겨내는 형질전환 감자와 고구마의 대량생산 기술개발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연구팀은 우리나라에서 많이 재배되고 있는 ‘대서’ 감자와 ‘율미’ 고구마에 직접 개발한 SEPA2 프로모터를 사용, 항산화효소의 일종인 CuAnSOD와 APX 유전자를 엽록체에서 많이 발현하도록 했다.

곽 박사는 “우리나라의 식량 자급률은 30% 수준으로 항산화 물질 개발은식량 자급률과 직접적으로 연관된다”며 “연구가 발전되면 지구 사막화 방지와 생태계 복원을 위한 환경식물을 개발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도움말 한국생명공학연구원 환경생명공학연구실 곽상수 박사 김신영 기자 ddalg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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