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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대학들, 판을 깨자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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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대학들, 판을 깨자는 건가

입력
2004.10.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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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지방과 강북의 학생ㆍ학부모들의 분노와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지역차별을 이처럼 심각하고 뼈저리게 느껴본 것은 처음이라고들 하고 강남에 살지 못하는 것이 한스럽다고 탄식한다. 학생들 가운데는 “수시는강남 애들을 위해 만든 것”이라는 피해의식이 팽배해 있다고 한다.그런데도 고교등급제를 실시한 대학들은 눈꼽 만큼의 반성도 없다. 그동안수험생과 학부모를 감쪽같이 속여왔는데도 말이다. 오히려 “이게 왜 고교등급제냐”며 목청을 돋우고 학력격차를 들고 나오더니 이제는 아예 내신부풀리기 실태를 까발리겠다고 나선다. 이 정도면 현행 입시제도의 판을 깨겠다는 말로도 들린다.

뭔가 대학들이 정도를 벗어나도 한참 벗어났다는 생각이 든다. 본말이 전도되고 뭐 뀐 놈이 성내는 형국이다.

저간의 사정을 따져보자. 대학들은 입만 열면 대입자율화를 내세운다. 그동안 대학들은 학교 특성과 건학이념에 맞는 유능한 인재를 선발해 양성하겠다며 조금씩 이나마 입시자율화의 열매를 따왔다.

그러나 그 결과는 어떤가. 고작 선배들의 학력으로 후배들을 옥죄는 저급한 수준이었다. 선배의 진학 실적이나 수능 성적을 근거로 한 기준이라는것이 얼마나 무책임하고 부정확한지는 삼척동자도 분별할 수 있다. 여기에는 기본적으로 1점이라도 성적이 앞서는 학생을 선발하겠다는 단순한 발상이외에는 없었다.

백짓장 차이의 점수가 세계수준의 대학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거나 사회가필요로 하는 인력을 공급하는 데 보탬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대학들은 성적만능주의에서 단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언제 대학이 창의성 있는 인재를 뽑기 위해 치열하게 전형방법과 선발지표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이 있는가. 이번에 문제가 된 수시모집이라는 것도 그렇다. 2002학년도부터 시작된 수시모집은 시험성적 위주의 한줄세우기 폐단에서 벗어나 다양한 분야의 특기자들에게 기회를 주자는 취지였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성적우수자를 다른 대학에 뺏기기 전에 먼저 확보하기위한 경쟁으로 변질됐다. 목적부터가 그러니 공부 잘하는 학생들을 가려내기 위해 고교등급제라는 변칙적인 수단이 등장한 것이다.

대학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끄집어내는 학력격차라는 것은 어떤가. 현행 제도에서 고교간 혹은 개인간의 학력차는 수능에서 절대적으로 반영되고 있다. 일부 대학에서 실시하는 논술에서도 마찬가지다. 그것을 내신에서까지완벽하게 반영하라는 것은 옳지 않다.

내신이 뭔가. 한 학생의 교과와 비교과 성적을 통해 학교프로그램에 얼마나 잘 적응하는지를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도구다. 그 내신에서조차 학교간차이를 반영해 일렬로 세우자는 말인가. 더욱이 학생들이 고교를 선택할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 현 상황에서 이를 인정하라는 것은 억지다.

강남과 시골의 고교가 어떻게 학력이 비슷하겠느냐는 논리도 맞지 않다. 학원이 몰려있는 사교육1번지 강남과 그렇지 않은 지방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강남이나 특목고 학생들에게는 좋은 교육여건을 활용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고교등급제 등을 통해 별도의 가산점을 준다는 것은 이중의 특혜다.

대학은 강북과 지방에 있는 단 한명의 인재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를 가져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정교하고 다양한 전형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대학이 교육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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