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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 IT계의 선구자 이용태 <21> 박태준회장과의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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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 IT계의 선구자 이용태 <21> 박태준회장과의 사연

입력
2004.10.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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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B맥주 정수창 사장의 제안이 물거품이 된 뒤에도 비슷한 일을 경험했다. 포항종합제철(현 포스코) 박태준 회장과 얽힌 사연이다. 내용은 다르지만 일맥상통하는 게 있어 소개한다.㈜한국데이타통신 사장 때 일이다. 1983년 가을 무렵이었다. 하루는 포항공대 김호길 총장이 내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포항종합제철의 공장 규모를 확대하는 사업이 조만간 일단락된다.

이에 맞춰 박태준 회장이 사업 다각화를 강조하고 있다. 그 작업을 박득표 부사장이 맡았는데 그 양반 고민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그가 아는 건 제철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단 박 부사장에게 이용태 사장을 만나보라고 권했으니 시간을 내달라.”

1992년 9월 포항공대 부설 정보통신연구소 정보산업대학원 기공식에서 박태준(오른쪽) 회장이 김호길(오른쪽 두번째) 총장의 설명을 듣고 있다. 왼쪽 두 번째가 나다.

얼마 후 박 부사장이 찾아왔다. 나는 넌지시 “사업 다각화를 구상하고 있다는데 새로 진출할 분야는 어떤 거냐”고 물었다. 박 부사장은 즉답을 피한 채 “박태준 회장이 정보산업 쪽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포철에서 아예 삼보컴퓨터와 데이타통신을 사는 게 어떠냐”고 되물었다.

눈이 휘둥그래진 박 부사장에 나는 “이들 기업을 산 다음 포철이 자금을 투입하면 삼보는 세계 최고의 PC회사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데이타통신도 세계에서 가장 앞선 회사로 키울 수 있다. 또 두 회사를 기둥으로 삼는다면 다른 분야로 얼마든지 뻗어나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삼보는 내가 최대 주주고 데이타통신은 대표이사니까 포철이 마음만 먹는다면 성사될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당시 나는 삼보와 데이타통신을 운영하면서 적잖은 고통을 겪고 있었다. 의욕은 넘치지만 자금이 부족해 포기해야 할 사업이 많다는 걸 통감했다.

삼보는 벤처 비즈니스로 출발했다. 돈이 부족했다는 뜻이다. 주머니 돈을 털어낸 게 전부다. 아이디어만 믿고 기술자들이 모여 사업을 시작했던 것이다. 그런데 막상 사업을 하다 보니 어려움이 한 둘이 아니었다. 우선 당시 한국의 중소기업은 사업을 잘해도 망하고 못해도 망하게 돼 있었다.

잘해도 망한다는 말에 의아해 할 독자도 많을 터이다. 그 이유는 이랬다. 물건을 사겠다는 사람이 갑자기 늘어나서 100억원 정도의 주문이 밀려왔다고 치자. 그러면 외상으로 30억원 어치의 부품을 사서 물건을 만들게 된다. 물건 값은 판 다음 60일 내지 90일 뒤에야 받는다. 때문에 자금 여력은 없는 회사는 버티지 못하고 부도가 나기 십상이었다. 삼보도 그런 처지였다.

또 통신 사업은 선(先) 투자를 해놓고 나중에 가입자로부터 수입을 얻어내는 게 보통이다. 데이타통신은 늘 투자 자금이 여의치 않았다.

박 부사장은 그러나 내 물음에 대해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은 채 돌아갔다. 그리고 영영 소식이 끊겼다. 그때 만약 포철이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어땠을까. 포철을 위해서나 한국의 정보산업을 위해서나 매우 중요한 사업을 할 수 있었다고 믿는다.

이런 일이 있은 지 또 몇 년이 흘렀다. 나는 데이타통신을 그만 두고 삼보로 복귀했다. 그런데 김호길 총장이 이번에는 아주 구체적인 제안을 가지고 왔다. 김 총장은 “박태준 회장이 정보 산업에 1년에 1조원 씩 10년 동안 투자키로 결정했다. 박 회장이 이에 관해 이용태에게 자문하라고 직접 지시했다”고 말했다. 내 가슴이 다시 요동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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