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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IT계의 선구자 이용태 <20> 연구원 100명 지원계획 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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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IT계의 선구자 이용태 <20> 연구원 100명 지원계획 무산

입력
2004.10.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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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했던 천군만마 얻지 못하고OB맥주의 정수창 사장은 나중에 두산그룹과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역임한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경영자였다. 정 사장은 그 연배 중에선 뛰어나게 영어를 잘했고 회사에서는 존경 받는 어른이었다. 뿐만 아니라 경제계 전체의 리더로 우리나라 경제 발전에 많은 공헌을 했다.

1970년대 한국에서 기술개발이 기업 경영에 중요하다는 인식을 가진 기업가는 많지 않았다. 그때는 은행에서 돈을 많이 빌릴수록 큰 돈을 벌 수 있었다. 그 돈으로 부동산을 사 두면 땅값이 엄청나게 올라 간단하게 치부(致富)했다.

제조업을 한다 해도 일본에서 한물 간 기술을 들여와 우리나라의 값싼 노동력으로 물건을 만들면 수출할 수 있었다. 그런 시절 정 사장은 기술개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수시로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에 들러 연구원들을 격려해 주었다.

이화여대 교수 시절인 1964년 가을 나(왼쪽)와 한상준(가운데) 당시 이대 교수 등이 캠퍼스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정확히 40년전 사진으로 반공표어가 눈길을 끈다.

특히 국산 음료를 개발하기 위해 KIST에 꾸준히 프로젝트를 맡기는 등 연구소를 지원했다. 정 사장은 고향이 경북 영덕으로 나와 동향이었다. 그래서 자연스레 자주 만날 수 있었다. 덕분에 분야는 다르지만 정보기술(IT) 산업의 미래와 중요성에 대해 설명할 기회가 많았다.

한번은 내가 연구원 100명을 3년만 대주면 세계 최고의 마이크로 컴퓨터를 개발할 수 있는데 정부에서 받아주지 않는다고 하소연 했더니 그는 전혀 예기치 않은 반응을 보였다. “이 박사, 그러면 OB맥주에서 100명을 3년간 제공할 테니 꼭 성공해 보라”는 꿈 같은 제의였다.

당시 OB맥주는 가장 큰 시장 점유율을 자랑했다. 특히 한국 사람들이 맥주 맛에 빠져들기 시작한 때라 매출이 해마다 급격히 늘어났다. 경제적으로 그 정도는 충분히 지원할 만 했다.

나는 용기백배 해 KIST로 달려갔다. 그러나 구체적인 계약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장벽을 만났다. 정 사장은 OB맥주에서 100명을 뽑아 KIST에 파견할 생각이었다. 그 인건비는 비용으로 처리돼 세금을 감안하면 실제 부담이 적은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KIST는 프로젝트 비용을 일단 돈으로 내고 KIST에서 직접 연구원 100명을 뽑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야 KIST 실적으로 잡히기 때문이다. 양측은 이견을 좁히지 못해 그 일은 성사되지 않았다.

참으로 아까운 노릇이었다. 나는 KIST에 사표를 냈다. 연구소를 나가 직접 회사를 만드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확실치 않지만 전자계산기 국산화 연구실을 만들기 전인 75년 무렵이다.

그러나 KIST는 내 사표를 받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퇴계선생 문집을 들고 가 부소장에게 “옛날 왕권이 절대적이던 시절에도 퇴계 선생은 나라에서 주는 벼슬을 일흔 아홉번이나 사양했다. 이게 퇴계 선생이 임금께 올린 사직서다. 지금은 절대 왕권 시대도 아닌데 사표를 받아주지 않는 건 지나친 처사”라고 항변했다.

그러나 부소장은 연구소에서 내가 필요하니 나가지 말라고 간곡하게 만류했다. 나는 이를 뿌리치지 못하고 KIST에 그대로 남았다.

그때 부소장이 한상준 박사였다. 한 박사는 나를 이화여대 전임강사로 써주고 미국 유타대학의 이태규 박사에게 추천했으며 학위가 끝난 다음에는 KIST로 데려와 준 분이다. 존경하는 선배이자 은인인 한 박사가 나라와 연구소를 위한 충정으로 당부하는 말을 거절할 수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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