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5년 10월13일 영국 여성 정치인 마거릿 대처가 그랜트햄에서 태어났다. 처녀 때 성은 로버츠였으나, 군인 출신 사업가 데니스 대처(2003년 작고)와 결혼해 대처 부인이 되었다. 마거릿 대처는 1959년 보수당 소속 하원의원으로 정계에 첫 발을 디뎠고, 교육부장관을 거쳐 1975년 전직 총리 에드워드 히스 당수를 물리치고 보수당 최고 지도자가 되었다.그는 1979년 총선에서 보수당을 승리로 이끌어 영국 최초의 여성 총리가된 이후 1990년까지 과감한 재정긴축과 국영기업의 사유화, 노조에 대한 초강경 대처 등 급진적 자유주의(신보수주의) 정책으로 단기적으로나마 영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대처는 내치에서만이 아니라 아르헨티나와의 포클랜드 전쟁, 유럽통합 반대 등 국제 무대에서도 강경노선을 견지해‘철의 여인’으로 불렸다.
대처는 자신을 ‘여성’ 정치인으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그저 정치인으로 생각했고, 그래서 자신이 이끄는 내각에 여성 각료를 한 사람도 들이지 않았다. 대처가 영국 역사상 가장 오래 집권한 총리였음에도, 그의 재임 중영국에서 여성의 정치세력화는 이렇다 할 진전을 이루지 못한 셈이다.
그러나 대처는 여느 여성 정치 지도자들과 달리 아버지나 남편 등 가족관계의 후광을 전혀 빌리지 않고 오직 자신의 재능과 노력만으로 대국의 최고지도자가 돼 성공적으로 직무를 수행함으로써, 독립적 삶을 살아가려는 많은 여성들의 귀감이 되었다.
1960년대 이후 세계적으로 마흔 명 가까운 여성이 정부 수반이나 국가 수반이 되었다.대처의 예에서 보듯 뛰어난 여성 정치인이 반드시 여성의 후원자가 되는 것은 아닐 테지만, 그런 정치인이 많아질수록 정치환경이 여성에 유리해지리라고 기대할 수는 있겠다. 한국에도 곧 여성 최고지도자가 나왔으면 좋겠다. 그가 대처 같은 보수주의자가 아니면 더 좋겠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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