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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만에 열린 설악의 비경 흘림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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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만에 열린 설악의 비경 흘림골

입력
2004.10.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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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남쪽 자락에 흘림골이라는 골짜기가 있었다. 골짜기가 간직한 아름다운 경관은 사람들의 심신을 풀어주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돌려준 것은 환경훼손과 자연파괴였다. 골짜기는 더 이상 사람들을 맞을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병에 걸렸다.오랜 간호 끝에 회복된 골짜기가 지난 달 20일 다시 열렸다. 이제는 더 이상 상처를 주지 말라는 당부와 함께 조심스레 속살을 드러냈다. 1985년 문을 닫았으니 20년 만이다. 때 맞춰 들기 시작한 단풍은 사람을 홀릴 정도로 매혹적인 자태를 뽐내고 있다. 그 현란한 아름다움속을 들여다봤다.

이름조차 생소한 흘림골은 한계령휴게소와 오색약수터 사이에 자리잡은 3㎞ 가량의 골짜기이다. 한계령휴게소에서 양양 방면으로 향하는 44번 국도를 따라 2㎞쯤 내려오다 보면 흘림골 입구를 만난다.

개방된 지 얼마 되지 않은데다 입구가 도로변에 있어 자칫하면 그냥 지나치기 쉽다. 입구를 찾았으면 본격적인 등반시간이다. 코스는 흘림골에서 시작, 주전골, 큰고래골을 지나 오색약수터에 이르는 6.5㎞ 구간이다.

어렵게 개방된 곳이라 그런지 쉽게 속살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 흔한 워밍업조차 없다. 곧바로 가파른 코스의 연속이다. 1㎞ 남짓 오르면 여심(女深) 폭포와 만난다. 이름부터 묘하다. 여성의 깊은 곳이라니…. 하지만 폭포에 이르면 왜 이런 이름으로 불리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어쩌면 저리도 여성의 성기와 닮아있을까, 보기에도 민망할 정도이다.

지금 봐도 고개를 똑바로 들지 못할 곳이지만, 여기서 흘러내리는 물을 받아 마시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설 때문에 신혼부부들이 반드시 찾아야할 코스였다고 한다. 흘림골이라는 지명도 이 물이 흘러 들어가는 골짜기라고 해서 붙었다.

여심폭포에서 등선대까지 이어지는 코스의 이름은 깔딱고개이다. 무릎을 두들겨가며 올라야 할 정도로 가파른 산행길이다. 길이가 300m에 불과한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선녀가 하늘로 오른다는 등선대(登仙臺)는 흘림골 산행의 절정이다. 기암괴석의 바위덩어리를 힘겹게 오르면 사방으로 펼쳐진 남설악의 정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사방에 뾰족바위로 뒤덮인 산들이 연봉을 이룬다.

그래서 붙은 이름이 만물상이다. 등선대는 만물상의 중심인 셈. 동으로는 칠형제봉과 그 너머로 한계령과 귀때기청봉이, 서쪽으로는 동해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산정상에서 7부 능선까지는 단풍으로 뒤덮였다. 단풍바다로 둘러싸인 섬에 갇힌 느낌이다. 아무리 봐도 지루하지 않다. 도대체 이 곳이 어디란 말인가. 설악에도 이런 절경이 있었나 눈을 의심하게 된다.

입을 다물지 못할 장관과 아쉬운 작별을 한 뒤 다시 등선폭포로 향한다. 단풍이 천천히 산 아래로 물들어가고 있다. 하루에 40m씩 내려간다고 하니한 곳에 머무르면 단풍이 물드는 장면을 구경할 수도 있을 듯하다. 하지만세속에 찌든 바쁜 나그네의 발길은 점점 빨라져만 간다.

등선폭포와 무명폭포를 지나 십이폭포에 이르면 설악의 또 다른 비경인 주전골을 만난다. 옛날 도적들이 이 골짜기에 들어와 위조 화폐(錢)를 만들다가(鑄) 붙잡힌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십이폭포에서 주전골삼거리까지는 800m 남짓한 짧은 코스이지만 외설악의천불동, 내설악의 가야동과 함께 설악산 3대 단풍명소로 알려진 곳이다.

서서히 물들고 있는 단풍이 주말쯤 절정에 달하면 계곡 전체가 만산홍엽이 될 터이다. 이 쯤에 오면 대다수 등산객들은 총총걸음을 잠시 멈춘다. 신발을 벗어던진 채 한기가 감도는 물에 발을 담근다. 뼈속까지 시원해지는 느낌과 함께 장시간 등반으로 지친 발의 피로가 확 풀린다. 비싼 돈 주고발마사지를 할 필요가 없다.

주전골삼거리에서 왼쪽으로는 용소폭포, 오른쪽으로는 큰고래골이 이어진다. 금강문, 선녀탕, 오색제2약수, 오색약수터로 연결되는 이 곳을 한때 일부 등산객이 주전골로 잘못 알기도 했다.

주전골이 한때 출입이 통제되자 이 일대를 지명도에서 앞서는 주전골로 부르던 것이 와전된 까닭이다. 주전골에 비해 명성은 뒤지지만 큰고래골을 흘러내리는 맑은 물 역시 빠지지 않는 절경을 자랑한다. 물맛 좋기로 유명한 오색약수 한 모금은 힘든 산행의 고단함을 해소시켜주는 감로수이다.

새삼스레 설악의 아름다움을 맛볼 수 있는, 명불허전(名不虛傳)의 여행. 불과 4시간 가량의 산행 대가로는 너무도 값진 선물이다.

cmhan@hk.co.kr /남설악(양양)=글ㆍ사진 한창만기자

■여행수첩-흘림골

▲ 가는 길

설악산은 워낙 규모가 넓어 내ㆍ외설악 혹은 남ㆍ북설악으로 세분한다. 내설악은 한계령과 미시령을 경계로 서쪽지역을, 외설악은 동쪽을 일컫는다.

또 한계령 이남을 남설악, 이북을 북설악으로 부르기도 한다. 흘림골은 오색약수터 일대와 함께 남설악에 속한다. 대체로 양양군에 포함되는 지역이다.

수도권에서 시작한다면 6번 국도를 타고 양평 용두리에서 44번 국도를 이용하면 한계령까지 닿는다. 흘림골 등산로 입구는 아직까지 정비가 제대로되지 않은데다, 주차장 규모도 10여대 정도의 차만 수용할 수 있어 불편하다.

특히 주말이면 도로변에 불법주차 차량이 늘어나 상당히 혼잡하다. 차량을 이용하려면 반대편 오색지구에 주차한 뒤 등산을 시도하는 편이 낫다.

▲ 먹을 것

흘림골 주변보다 오색지구에 상가가 밀집해있다. 산채나물이나 토종닭을 재료로 한 음식점이 대체로 무난하다. 한계령식당(033-672-0621), 설악식당(672-3216), 산처녀식당(672-3428), 통나무집식당(672-3523), 처가집식당(672-3232) 등.

▲ 숙박시설

등산을 흘림골에서 시작한다면 오색지구에서 마무리한 뒤 숙박시설을 잡는것이 좋다. 오색지구는 설악의 대표적인 관광시설 밀집지역으로 숙박시설이 좋다. 오색그린야드호텔(033-672-8500), 오색온천장(672-3635), 약수온천모텔(672-3156), 현대온천장(672-4088), 설악온천장(672-2645), 한계령오색펜션(672-3700) 등.

▲ 안내

개방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관련자료를 찾기가 쉽지 않다. 전문여행사의 안내를 받는 것도 한 방법이다. 승우여행사(02-720-8311)는 오전에 서울을 출발, 당일 코스로 흘림골, 주전골, 큰고래골을 모두 둘러보는 상품을 판매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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